분장실 老배우가 되어 묻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2020.11.09 17:42
수정 : 2020.11.10 00:54기사원문
■36년 만에 재연하는 '더 드레서'
정동극장이 매년 한 명의 배우를 주목해 그 배우가 선택하고 출연하는 작품을 올리는 '정동극장 연극 시리즈'를 선보인다. 첫 주자가 송승환이다. 송승환은 영화 '피아니스트'의 각본가로 유명한 로날드 하우드의 작품 '더 드레서'를 택했다.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리타 길들이기' '아마데우스'도 고려했다가 문득 1983년 문고헌 연출자가 좋은 대본을 찾았다며 기뻐하던 순간이 떠올랐죠." 이듬해 문 연출자가 국내 초연한 이 작품은 제21회 동아연극상 대상·연출상을 수상했다. 해외에선 이안 맥켈런과 안소니 홉킨스 출연의 TV영화로도 제작됐는데, 국내에선 무려 36년만에 재연된다.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극 '리어왕'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송승환이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 대표이자 배우 '선생'을, 안재욱과 오만석이 그의 오랜 의상 담당자 '노먼'을 연기한다.
역할 자체가 송승환의 삶과 유사점이 많다. 그는 "분장실은 내게 친숙한 공간이라 반가웠다"며 "연극을 앞두고 벌어지는 일들도 내가 경험했던 일과 유사했다"고 작품을 고른 이유를 말했다. 연습이 한창인 요즘은 어떨까? 그는 "선생의 죽음이 크게 다가온다"고 답했다. "'나한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선생의 대사가 자꾸 생각납니다. 그렇게 말하고 죽으면 안 될 거 같은데,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돼요."
■"팬데믹에도 무대 계속될 것"
'더 드레서'에서 전쟁 통에도 연극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코로나19에도 공연을 하는 현재와 닮았다. 송승환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피난지에서 연극을 했다고 한다"며 "'난타'가 개막한 것도 1997년 IMF 때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매일 매진 사례를 빚었는데 '난타'를 보면 속이 후련하다고 했죠. 힘든 일상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게 극장의 마술이죠. 동시에 일상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할 기회를 주죠." 바로 인생의 본질 같은 것. "PMC프로덕션 창립 이래 올해처럼 힘든 건 처음입니다. 아마 '더 드레서'를 하지 않았으면, 눈앞의 문제만 고민했을 겁니다. 배역을 연기하며 내 삶도 돌아보게 됐죠. 관객들도 나와 같은 걸 느낀다면 이 연극을 하는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이 작품은 또한 송승환의 인생 3막을 여는 신호탄과 같다. 그는 "건강문제로 일의 가짓수를 줄여야 한다"며 "어떤 일에 몰입할까 자문했고 연기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송승환은 흑백TV 시절인 1965년, 어린이동화구연대회에서 1등을 한 것을 계기로 방송에 출연, 아역 성우로 발탁됐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라디오, 연극, 뮤지컬 등 그야말로 대중문화와 공연예술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했다. '젊음의 행진' '가요톱10'과 같은 음악방송 MC를 보면서 연극 '에쿠우스' 무대에 올라 배우상을 거머쥔 요즘말로 융합형 인재였다. 40대엔 공연제작자로 성공적으로 변신해 제2회 한국CEO그랑프리 문화CEO상, 제3회 대한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늘 재미를 원동력 삼아 살아왔지만 인생의 변곡점마다 큰 용기를 냈다. 송승환은 "1970~80년대엔 배우가 천대받던 시절이라 아역 활동을 마치고 평범하게 살려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안 맞았다"며 "1977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배우가 되기로 결정하고 자퇴 후 극단에 들어갔을 때, 1985년 한창 전성기에 돌연 뉴욕행을 선택해 3년6개월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게 제 인생 가장 큰 용기를 낸 순간"이라고 말했다. "한번 사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리스크가 있겠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큰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죠." 60대에 닥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무대에 서는 것도 늘 즐겁게 도전해온 송승환의 용기 아닐까. 18일 개막하는 정동극장의 '더 드레서'가 특별한 이유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