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과 시진핑 사이에서

      2020.11.09 18:44   수정 : 2020.11.09 18:44기사원문
아마겟돈 같았던 미 대선의 승자는 결국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로 굳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디쯤 서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대중 압박을 지켜봤던 우리에겐 이제 후자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미·중 패권다툼 와중에 한국 외교는 길을 잃은 느낌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전에서 드러난 단면도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막판 미국 지지에도 불구하고 표 대결에서 나이지리아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들었다.
우리와 통상마찰 중인 일본이 나이지리아 측을 민 건 그렇다 치자. 문재인정부가 미국의 의구심 속에 친중 행보를 보였지만 중국은 처음부터 유 후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최근 한·미 관계가 삐걱거리는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 워싱턴 한미안보협의회의(SCM)가 그 징표다. 전시작전통제권 등에서 사사건건 이견을 보인 양국 국방장관은 공동회견도 없이 헤어졌다. 미국의 '코리아 패싱'은 이뿐이 아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일본과 동남아를 방문하면서 방한은 취소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는 협의체에 한국을 포함시키려는 '쿼드 플러스' 제안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뒤였다.

얼마 전 국감에서 이수혁 주미대사가 "(지난 70년처럼)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을 때 불협화음이 표면화됐다. 미 국무부는 "70년 된 한·미 동맹을 극도로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정색하고 반박했다. 한국계 학자 빅터 차도 기고문에서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7년간 미·중이 맞섰던 10개 이슈 중 호주는 8개에서 미국 쪽에 섰지만, 한국은 6개나 중국 편에 섰다는 분석이었다. 한국이 미국의 화웨이 5G 통신망 제재와 인도태평양전략에 동참하지 않았다면서….

사실 현 정부는 진작에 미·중 간 균형외교의 저울추가 중국 쪽으로 기우는 듯한 시그널을 발신했다. 2017년 12월 방중한 문 대통령이 한·중을 운명공동체로 엮는 순간이 그랬다.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은 큰 봉우리"라는 수사까지 동원했으니 말이다.

문재인정부는 이 과정에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중국과 전략적 협력이 필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일관된 굴신에도 결과는 허탈했다. 미·중 간 신냉전 기류와 함께 최근 시진핑 주석은 "(6·25전쟁 시 북한을 도와 미국과 싸운) 항미원조는 정의의 승리"라며 북·중 혈맹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반대편(중국)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 오바마 정부 때인 2013년 방한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한 말이다. 그 무렵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바이든 시대에도 미국의 중화패권 견제는 계속될 것임을 확인해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다. 트럼프식 요란한 대중 압박보다 다자협력 체제로 대중 포위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미·중 간 어정쩡한 줄타기를 시도하다 자칫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을 수 있다.
알맹이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올인하느라 중국으로 경사되면서 미국과의 북한 비핵화 공조를 깨서는 곤란하다. 한·미 동맹이 안보 차원을 넘어 정치적 다원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헝클어진 한·미 관계를 리셋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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