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우 kwarosa(과로사)? Mukbang(먹방)?

      2020.11.13 06:00   수정 : 2020.11.13 05: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영국 BBC는 지난 3일(현지시간) 한국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을 보도하며 'kwarosa'라는 단어를 썼다. 과잉업무로 인한 사망(death from overwork)이라고 풀어쓰는 대신 한국어 소리를 그대로 고유명사처럼 표기한 것이다.

13일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영어권 나라 등에서 한국 사회만의 특징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영미식 해석으로 바뀌지 않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되며 사전에 등재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갑질(gapjil)', '과로사(kwarosa)', '먹방(Mukbang)', '반찬(banchan)', '재벌(chaebol)', '홧병(hwa-byung)'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단어들은 다소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사회·문화상과 독특한 뉘앙스를 잘 담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드러내는 단어 많아
BBC는 우리나라에서 14명의 택배 노동자가 사망한 사례를 거론, 유족들이 사망원인을 과로사(kwarosa)로 지목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과로사에 대해 "과로사 - 극심하고 고된 노동의 결과 심부전이나 뇌졸중에 의해 급사한 것을 지칭하는 한국어 용어"라고 설명했다.

외신들이 주목한 단어 중에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는 단어가 여러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갑질(gapjil)재벌(chaebol)이다. 2년 전, 뉴욕타임스(NYT)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논란을 설명하며 ' 갑질(gapjil)'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NYT는 갑질에 대해 "중세시대 영주처럼 부하직원 또는 하도급업자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후 경비노동자에 대한 입주민의 갑질, 매니저를 향한 연예인 갑질 등 우리사회 갑질 사례가 잇따르면서 외신에서는 한국의 병폐적 위계질서 문화를 설명할 때 갑질이라는 단어를 함께 소개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큰 사전으로 꼽히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OED)에 등재된 단어도 있다. 재벌(chaebol)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재벌을 "한국 대기업의 형태, 특히 가족 소유의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재벌과 같은 기업 형태는 때때로 'conglomerate'라고 번역될 때도 있지만 한국 특유의 '재벌' 기업이나 문화를 지칭할 때는 'chaebol'로 쓰인다.

■언어의 기원 밝히고 한국 사회만의 '특징적 현상' 반영
과로사와 갑질·재벌이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1차적 이유는 이를 대체할 적확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과잉 업무로 인한 사망'이라고 하면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담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로사'라는 단어는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일자리 보전을 위해 과로해서라도 일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며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는 'death from overwork'라고 하면 자발적으로 과잉 노동을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벌이나 학원의 경우에도 한국 사회의 특수한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리 그대로 표기한다. 특히 '갑질'은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workplace harassment'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인격적으로 모욕한다는 뉘앙스까지 담아내지 못해 'gapjil'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사회 병리현상을 나타내는 단어의 기원을 밝히려는 차원에서 고유명사처럼 쓴다는 분석도 있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은 "과로사, 갑질은 부정적 사회현상이기 때문에 해당 언어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리나라 현상이 아니다'라는 회피 전략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정적 뉘앙스를 가진 단어의 원형을 밝힘으로써 '다른 나라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는 의미다.

생소한 언어를 통해 대중의 주목도를 높이는 측면도 있다.
자국의 일반적인 단어로 풀어쓰기보다 외국 언어의 이국적 어감을 그대로 살려 한 번 더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먹방(mukbang)이나 반찬(banchan)처럼 한국 문화가 소리대로 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경제력·문화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 공공언어과장은 "아무리 사회 병리현상이 있어도 우리나라가 주목받지 않으면 화제로 삼기 어려울 텐데, K-pop 등을 통해 우리 문화 요소들이 많이 소개되면서 우리 어휘도 흥하게 된 것"이라며 "긍정적 의미를 담은 단어가 퍼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만 고유명사화 현상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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