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길병원, '의사 창업'으로 국산 의료기술 글로벌화 꿈꾼다
2020.11.11 15:03
수정 : 2020.11.11 15:03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들이 연구중심병원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등 의료산업 발전의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뇌신경 질환, 근감소증 분야에서 의사가 창업한 기업으로는 드물게 100억 원 이상의 투자유치를 달성하고, 안과 분야 신의료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은 글로벌 진출을 위한 미국 현지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의사들의 벤처 창업은 임상에서의 경험과 지식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첨단 의료기술 산업으로 결실을 맺고자 하는 연구중심병원 운영 방향과도 부합한다.
■세계 최초 AI기반 뇌신경질환 예측진단 솔루션 개발 기업 '휴런'
신경과 신동훈 교수가 2017년 설립한 휴런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진행된 시리즈A·B에서 총 183억원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신 교수는 2017년 '중추신경계 질환을 위한 신약개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바이오마커 개발'을 주제로 보건복지부의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이 연구는 파킨슨, 뇌졸중 환자의 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질환의 예후를 예측하거나 진단하는데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연구다. 신 교수는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성영희 교수, 영상의학과 김응엽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로, 양성자 단층촬영(PET) 검사 없이 MRI만으로 파킨슨을 조기에 진단하는 AI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현재 파킨슨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MRI와 PET 검사가 필수로, 비용과 시간면에서 환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신 교수팀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통해 뇌MRI 검사 시 몇 분의 시간을 추가 검사해 파킨슨을 조기에 진단하는 검사 소프트웨어를 고안했다.
휴런은 의료영상진단보조소프트웨어로 의료기기 제조업 허가를 획득하고, 올해 7월 식약처 혁신의료기기 제3호로 지정받았다.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을 포함해 10개 병원에서 대규모 임상도 진행 중이다. 2022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기술특례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신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도 현재까지 파킨슨병에 AI를 적용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파킨슨을 비롯한 뇌신경질환을 조기 진단하는데 세계적 표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위축증 관련 신약개발 등 4개 파이프라인 확보 '이뮤노포지'
이뮤노포지는 근감소증 치료 신약개발 기술력을 확보한 바이오벤처기업이다. 가천대 길병원 가천유전체의과학연구소장인 안성민 교수와 동아제약, LG생명과학 등에서 25년 이상 바이오신약개발 및 글로벌 기술이전 경험이 있는 장기호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이뮤노포지는 근감소증 치료제 관련 용도특허를 바탕으로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페이즈바이오로부터 신약 물질을 기술 이전 받아 근감소증 및 근위축증 관련 질환 치료제를 발하고 있다.
현재 듀시엔형 근이영양증 및 다발성근염 관련해서 미국 FDA 임상 2상 허가를 진행 중이다. 특히 페이즈바이오는 이뮤노포지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보고 시리즈A에 참여해 이뮤노포지의 주식을 4% 넘게 보유하고 있다.
이뮤노포지는 근감소증 치료제와 만성골수백혈병 치료제 등 희귀, 난치성 질환 신약 파이프라인 4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110억원의 투자 유치 및 약 70억원의 정부 연구비를 지원받아 2022년 IPO를 목표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 교수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일본의 제약회사 및 연구진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백내장 수술용 기구의 표준을 꿈꾸는 '오큐라이트'
안과 남동흔 교수는 백내장 수술을 할 때 의사, 환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한 기구를 개발해 창업했다. 기존의 백내장 수술은 현미경 조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밝은 빛이 일직선으로 조사돼 환자의 눈부심이 심하고, 각막 및 망막 손상 위험이 있다.
남 교수는 수술용 챠퍼(수정체를 찍거나 이동시키는 용도의 기구) 끝에 조명을 달아 외부에서 현미경 조명을 켜지 않고 수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환자의 눈부심이 덜할 뿐 아니라 더욱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남 교수는 약 10년간 연구를 거듭하며 수술의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하는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몇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지난 2017년 오큐라이트를 설립했다. '안구 내 조명을 이용한 백내장 수술'로 식약처 인허가를 획득하는 것은 물론 보건복지부 보건신기술(Net)로 인증받았다. 국내 의료진이 개발 한 수술법이 보건신기술로 인증받은 것은 최초다.
오큐라이트는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해 2019년 5월 뉴저지에 미국법인을 설립했다. 올해 6월부터 제품 생산 및 판매를 개시해 현재 국내 대학병원 4곳을 포함해 9개 병원에서 구매해 수술에 사용 중이다. 가천대 길병원에서는 모든 백내장 수술에 신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남 교수를 책임연구자로 하는 '조명챠퍼를 사용한 백내장 수술과 기존 수술 비교 임상시험'은 지난 5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 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 교수는 "국내 안과에서 자생한 의료신기술이 국제적으로 백내장 수술의 표준치료가 될 가능성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고 말했다.
■의사 벤처 창업, 임상경험 토대로 제품화 선도
비뇨의학과 정경진 교수와 소화기내과 정준원 교수도 창업 대열에 올랐다. 정 교수는 웨어러블 디바이드 헬스케어 제공 시스템과 발기부전 환자를 위한 기구 등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유에프유헬스'를 창업했다.
정 교수는 내시경적 접근을 통한 환부 위치 파악 감지 장치, 센서부 및 측정부를 구비한 내시경 도구 및 이를 포함하는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기업 '카이미'를 올해 2월 창업했다.
가천대 길병원은 연구중심병원 성과를 토대로 이처럼 휴런, 이뮤노포지, 오큐라이트, 유에프유헬스, 카이미 등 5개 벤처기업이 설립되는 디딤돌이 됐다. 의사들의 창업은 경험에서 시작된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 개발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의료 기술의 연구 성과가 산업 성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논의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김우경 연구부원장은 "2013년 연구중심병원 선정 이후 주요 연구 분야인 대사성질환 혁신 신약개발 및 뇌질환 진단기술 산업화 등 의료 전 영역에서 연구를 지속해 왔다"며 "전 세계적으로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 증가로 시장도 확대되고 있는 만큼 연구 성과가 산업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