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한진칼 사외이사 3인 지명 등 경영권 적극 개입
2020.11.17 21:38
수정 : 2020.11.17 21:38기사원문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위해 한진그룹에 8000억원을 지원하면서 사외이사 3인 지명권과 주요 경영사안에 대한 사전 협의 등 7개 의무를 부과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KCGI 연합 측이 한진칼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책은행이 사실상 혈세를 지원해 결과적으로 특정인(조원태 회장측)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백기사 역할을 한다는 시각을 의식, 회사 경영활동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이날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하는 계약을 하면서 투자합의서에 '한진칼의 산업은행에 대한 의무'로 7개 조항을 명시했다.
우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작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경영을 감시·통제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5000억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토록 했다. 산은은 이에 대한 담보금으로 대한항공 발행 신주에 대한 처분권한도 가져갔다.
한진칼은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해야 한다. 현재 한진칼 이사진은 조원태 대표이사 회장 등 사내이사 3인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사외이사 8인 등 11인으로 구성돼 있다.
한진칼은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산은과 사전협의를 해야 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인수 후 통합(PMI)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할 책임도 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작업에 산은이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진칼에서 독립해 회사를 감시·견제하기 위해 윤리경영위원회와 경영평가위원회도 설치된다. 윤리경영위원회는 한진그룹 오너가로 인한 리스크를 규제하기 위한 기구로, 외부전문가 등이 위원회의 과반수를 차지할 예정이다.
경영평가위원회도 산은 주도로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주기적으로 한진칼 경영 현황을 분석하고 평가해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주식 등에 대한 담보 제공과 처분 제한에 관련한 내용도 담겼다. 특히 조 회장은 보유한 한진칼 지분 전체와 대한항공 지분을 담보로 제공했다.
산은이 한진칼에 엄격한 감시·통제 장치를 마련한 것은 특혜 논란을 불식하고 항공산업을 재편하겠다는 의지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딜 당시 산은이 현대중공업에 사외이사 1인 추천권, 주식처분 제한 등의 의무만 부과했던 점과 비교해도 의무조항이 많다. 여기에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땅콩회항, 물컵갑질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전례가 있어 이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장치도 필요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진그룹 경영권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이번 인수 추진으로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가능해졌다는 분석 때문이다. 산은이 발표한 대로 한진칼의 50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가한다면 한진칼 지분율은 3자연합 42%, 조 회장 측 37%, 산은 11%로 바뀐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조 회장과 3자연합의 경영권 다툼이 진행 중인데 빅딜로 산은이 한진칼 지분을 보유하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며 "정부가 조 회장 측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