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최고의 선물.. 그렇게 우린 가족이 됐다
2020.12.01 17:25
수정 : 2020.12.24 10:36기사원문
우리는 부엌에 있었다. 그때 컴퓨터 화면에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한 흰색 래브라도, 레기의 사진이 나타났다. "레기가 보고 싶어요. 레기만큼 충성스러운 개는 없을 거요. 진정한 친구였지." 도널드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다른 개를 키워 보는 게 어떻겠소."
레기는 새끼 때부터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애리조나주 코튼우드의 집으로 레기를 처음 데려왔을 때 켈시가 일곱 살, 타일러가 네 살이었다. 거기서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밴쿠버로 이사했을 때도 레기가 있었다. 레기는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모든 일, 우리 가족의 삶 한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강아지도, 아이들도 나이를 먹는다. 아이들은 하나둘 성장해 대학으로 떠났고, 막내 오스틴만이 집에 남았다. 물론 레기도 있었다. 집에서 레기가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레기가 열네 살이 되던 2011년, 테네시주 내슈빌로 가라는 주님의 계시를 느꼈다. 그곳은 내 담당 출판사와 더 가까워서 봄과 가을에 잡혀 있는 강연 일정을 소화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25년 동안 공립학교 교사이자 농구팀 코치로 일한 남편도 교직에서 은퇴하고 코치 일에 전념할 준비를 마쳤다. 게다가 아들들이 다니는 대학과도 더 가까웠고, 켈시의 신혼집에서는 불과 몇 십㎞ 거리였다.
"레기는 어떻게 해요?" 이사를 몇 달 앞둔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아직 고민 중이에요. 내가 차로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소." 남편이 몸을 굽혀 레기의 귀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레기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어이 친구, 내슈빌도 마음에 들겠지?"
일주일 뒤, 레기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우리의 엄청난 보살핌과 기도에 힘입어 레기는 며칠 만에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천천히. 더 신중하게. 이사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레기에게 두번째 뇌졸중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움직이지도, 먹지도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사랑하는 레기를 들어 자동차 뒤쪽에 눕혔다.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차 뒤편으로 모였다. 레기의 눈이 준비되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레기는 우리가 그리울 테지만 그런 몸으로 살아가기는 힘들었다. 남편은 레기를 수의사에게 데려갈 것이다. 녀석과 함께하는 마지막 운전이 될 터였다.
"죽을 때까지 절대, 절대 다른 개는 키우지 않을 거요." 나는 남편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진정이 되자 남편이 말했다. "내 평생 그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었소."
이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키우던 고양이 구스구스를 데리고 새집에 정착했다. 레기는 없었다. 첫날부터 내슈빌의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레기를 향한 그리움이 커져만 갔다.
2012년 10월 어느 날, 남편이 무척 당황스러운 말을 했다. 딱 한 번이지만 분명히 말했다. "우리 다른 개를 키워 보는 게 어떻겠소."
나는 오래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다. 몽상가이기도 하지만 추진력도 있는 편이어서 한 시간도 안돼 인터넷을 뒤져 하얀색 래브라도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리스 레이크 래브라도'를 찾아냈다. 한 어미에서 나온 새끼들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니!
나는 쏜살같이 계약금을 넣었다. 그 후로 몇 주 동안, 크리스마스 강아지는 혼자만의 비밀로 했다. 새끼들 중 한 마리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자 브리더(동물 교배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다. "저라면 노란색 목줄을 한 수컷으로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우호적이고 호기심도 많죠. 저렇게 귀여운 놈은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그럼 저 녀석으로 할게요." 내가 말했다. 노란 목줄을 한 수컷 강아지, 바로 저 녀석이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이 되자 나는 가족들에게 공표했다. "내일 크리스마스 이브 점심 직후, 모두 집으로 모이거라. 중요한 일이 있단다. 깜짝 선물이 있어. 아주 중요한 사람이 오니까 모두들 와야 해."
그렇게 가족 모두가 집으로 모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정확히 오후 1시가 되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전구를 가느라 여념이 없는 남편을 두고, 나와 아이들은 문 쪽으로 서둘러 갔다. 아이들은 내가 문을 여는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문밖에는 여태 본 중에 가장 잘생기고 완벽한 흰색 래브라도 강아지가 브리더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들 녀석은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저희한테 주시는 거예요? 정말 저희한테 새 강아지를 주시는 거예요?" 아들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아이들은 앙증맞은 강아지를 보며 '꺄악' 비명을 지르고 아양을 떨었다. 그 모습이 마치 행복한 그림 속 한 장면 같았다. 내 평생 최고의 12월 25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때 남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강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그는 뒤돌아 가버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진심인가? 정말 이 녀석을 보지도 않겠다는 걸까?' 당시 열다섯 살이던 오스틴이 재빨리 나섰다. "엄마, 제가 돌볼게요. 제가 책임지면 되잖아요."
한 시간 뒤, 오스틴은 강아지를 뒷마당으로 데려가 녀석이 있는 쪽으로 새로 산 트리 장식용 방울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남편이 뒷마당 발코니에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선물에 대해 남편과 아직 얘기를 나누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 시간 뒤, 오스틴을 도와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개 조련사인 자신의 삼촌 옆에서 남편은 강아지를 기르는 데 필요한 모든 노하우를 조금씩 습득한 터였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저물어 갈 무렵, 남편은 강아지가 보인 진전에 대해 크게 들떠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개 훈련에 관한 지식을 전수해 주고 있었다. 나는 바깥에 나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 밤늦게 우리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트리 아래 두었다. 그때 남편이 나를 끌어안았다.
"여보, 그 말은 진심이었소. 다른 개는 원하지 않아요. 레기가 내 마지막 개가 될 거요."
남편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단지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그는 잠시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 보는 듯했다.
"아니, 내 마지막 개였소."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그런데 전에는 이렇게 말했잖아요…. 우리 다른 개를 키워 보는 게 어떻겠소." 남편의 눈을 살피며 내가 말했다. 남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보, 그냥 해본 소리예요. 별 뜻 없이. 좋아하는 모습을 못 보여 미안하오. 단지 레기가 아닌 개를 레기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을 뿐이오."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는 커다란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전 그렇게 믿어요."
아이들은 강아지의 이름을 토비로 지었다. 토비는 첫날밤을 우리 침실에서 잤다. 크리스마스 이른 아침, 남편이 용변을 보게 하려고 토비를 뒷마당으로 데려갔을 때 대참사가 일어났다. 토비가 발을 헛디뎌 얼음장같이 차가운 수영장 물속으로 그대로 빠져 버린 것이다. 남편은 그 즉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잠시 후 토비를 가슴에 고이 안고 침실로 들어왔다. 그의 눈에 서린 염려와 걱정은 곧 사랑이었다.
"온기가 필요해요."
남편이 말했다. 그는 우리 꼬맹이 래브라도와 함께 침대로 올라가 그를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걱정이 한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보, 이불 좀 덮어줘요. 부탁할게요."
한 시간 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났을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토비가 온기를 되찾아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토비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편의 마음속에 새로운 사랑이 샘솟았다.
토비와 함께한 첫 크리스마스 이후,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면서 녀석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집을 지었다. 녀석은 항상 기분이 좋았고 활기에 넘쳤으며 낙천적이었다. 매일 아침, 토비는 입에 장난감을 물고 와서 자는 우리를 깨운다. 매일 5㎞씩 걷는 산책길에 따라 나설 때면 토비는 마치 처음 나온 것처럼 군다.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아이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들은 왔다가 떠난다. 하지만 22세인 막내 오스틴은 아직도 바닥에 누워 토비랑 놀기도 하고 함께 낮잠도 잔다. 나에게 토비는 친구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토비가 발밑에 버티고 앉아 있어야 소설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없이 토비는 남편의 것이다. 우리가 집을 비울 때면 토비는 집 앞 현관에 앉아 계단 끝에 발을 올려놓고 우리가 돌아오는지 살피며 기다린다. 녀석이 기다리는 사람은 남편이다. 늘 그렇다. 토비는 남편 자신도 원하는 줄 몰랐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가끔은 그런 것들이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2000년 전, 최초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구유에 담긴 그 갓난아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필요한 존재였고, 지금도 그렇다. 가끔은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들이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남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이드포스트(Guideposts)'는 1945년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 의해 미국에서 창간된 교양잡지로, 한국판은 1965년 국내 최초 영한대역 잡지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오랜 시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가이드포스트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 어려움 속에서 꿈을 키워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감동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의 후원을 통해 군부대, 경찰, 교정시설, 복지시설, 대안학교 등 각계의 소외된 계층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통해 더 많은 이웃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