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에 '무죄' 윤성여씨 "밤10시이후 외출안해"
2020.12.17 15:19
수정 : 2020.12.17 17:2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7일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가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오늘 오후 10시 KBS 1TV는 살인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온 인간 윤성여의 삶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성여 1부 - 나는 살인자입니다’를 방송한다. 이어 12월 24일에 방송될 2부-다시 되찾은 이름'에서는 재심을 통해 스스로의 이름을 찾아가는 윤성여의 여정을 따라간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한 무기수의 입에서 충격적인 자백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이라는 것이었다. 처제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던 이춘재. 그가 자백한 범죄 중엔 모방범죄로 결론이 난 ‘화성8차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인 이춘재의 입에 관심이 쏠려있던 시기, 제작진은 ‘화성8차사건’의 범인이라 알려진 윤성여 씨를 만났다. 하지만 20년의 긴 수감생활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 했다. 윤 씨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첫 만남 후 6개월이 지나서야 그의 일상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제작진에 따르면 윤성여 씨의 삶은 단조롭다.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 2교대를 반복하며, 쉬는 날이면 성당으로 향한다. 밤 10시가 지나면 외출을 하지 않는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새로 친구를 사귀는 일도 없다. 여행을 가본 적 역시 없다. 주로 만나는 사람은 출소 당시 정착에 도움을 준 박종덕 교도관과 나호견 교화복지회 원장. 윤씨는 나호견 원장 댁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직장에 나가 돈을 번다. 9년째 반복된 생활이다.
윤 씨가 단조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범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는 방법이 그뿐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 교도관과 나 원장 외에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그는 지금도 교도소가 있는 도시, 청주에 홀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윤성여 씨는 어쩌다가 살인자가 되었을까.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왼쪽 다리를 절게 된 윤 씨. 그가 ‘화성8차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건 불과 스물두 살 때였다. 당시 윤씨는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 한 농기구 센터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화성에 살고 있는 남성이라면 모두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던 그 때. 윤씨도 여느 평범한 청년들처럼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그러던 그를 경찰들이 한 달이나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이미 체포된 후였다.
“원래는 죽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 집 담을 넘다 보니까 문고리가 하나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여자가 있길래……”
1989년 7월 윤성여의 자백 내용 중 일부다. 경찰서에 끌려간 후, 윤 씨는 3일 만에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그에게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살인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온 윤성여는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텨냈을까?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