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내몰린 수술실CCTV··· 복지부는 뭐했길래
2020.12.19 14:16
수정 : 2020.12.19 14:15기사원문
CCTV를 규율하는 법은 공개되지 않은 장소를 촬영할 때 찍히는 사람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병원에서 환자 동의를 먼저 받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회에서 수술실CCTV 운영현황을 질타하고 나서야 실태조사에 나선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기관의 14% 가량이 수술실CCTV를 운영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수술실CCTV 법제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하는 배경이다.
■의사 출신 신현영, 수술실CCTV법 발의?
19일 국회에 따르면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이 16일 보건복지위에 회부돼 논의를 앞두게 됐다. 수술실CCTV 설치 및 촬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한 법령으로, 21대 국회에서 나온 수술실CCTV 관련 3번째 법안이다.
법안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촬영에 앞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인의 동의를 모두 받도록 했고, 촬영된 영상도 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서만 이용할 수 있게끔 했다.
열람기준도 마련했다. 생명, 신체, 재산상의 요청 및 의료사고 중재나 수사 필요에 따른 경우에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열람만 규정하고 제공에 대한 언급은 없는 점, 제공하지 않는 경우에도 처벌할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점에 있어 환자보호에 대한 고려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지난 정기국회 당시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을 포함한 환자보호 3법 논의에 적극 참여하지 않음은 물론, 보건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다수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조속한 논의를 촉구할 때도 함께하지 않은 신 의원이 기존 논의된 수술실CCTV 법안에 부정적인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여론이 뜨거운 환자보호 3법 심사를 담당하는 제1법안심사소위에 고작 6명의 의원만 배치하고 이중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출신인 신 의원을 포함시킨 바 있다. 그 결과 법안은 제1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본지 12월 5일. ‘[단독] 찬성한다던 의원 다 어딨나··· 넘어진 수술실CCTV법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있는 CCTV 법적 근거도 '없다'
신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배경엔 현재 의료기관 중 14%에서 운영되는 수술실CCTV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문제가 자리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전신마취 수술실을 갖춘 병원급 의료기관 1209개소와 의원급 633개소 등 모두 1842곳을 대상으로 수술실CCTV 설치 및 운영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한 병원 1722곳 중 14%인 242개소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 병원이 수술실CCTV를 설치해 실제 운영을 하는지,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환자들로부터 동의는 받고 있는지, 제공이나 열람요청을 받으면 따르고 있는지 등을 알 길이 없다는 데 있다. 현재 수술실 내부에 CCTV 설치 및 운영을 규제하는 법령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수술이 잘못돼 병원을 찾아도 “CCTV 녹화를 하지 않았다”거나 했어도 “보여줄 수 없다”는 답변과 마주하기 십상이다. 실제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 대다수가 수술실CCTV를 확보하지 못하고 의무기록지와 녹취에 의존해 재판에 나서는 형편이다.
의료사고 완전 승소율이 채 2%가 되지 않는 배경엔 이런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환자가 자기도 모르는 새 CCTV에 민감한 정보가 찍힐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상당수 병원이 수술 전 CCTV 촬영 여부를 환자에게 묻지 않고 실제 촬영을 감행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이 없는 상황에서 수술실CCTV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영상정보처리기기 관리기준에 따르게 된다. 해당 법은 개인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장소 내부에 CCTV를 설치하는 걸 금한다. 수술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를 어길 시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지만 실제 처분을 받은 병원은 없는 형편이다.
환자를 위해 수술실CCTV를 운용하는 병원이 도리어 법 위반으로 처분을 받고, 환자들에게 촬영한 CCTV를 주지 않는 병원은 자유롭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국민은 급한데 보건복지부는 '자율설치'
상황이 이 지경이 된 데는 보건복지부의 태만이 자리한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타하기 전까지 실태조사조차 않았던 보건복지부는 환자보호 3법이 논의된 지난 정기국회에서도 “자율설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지탄을 받았다.
이재명 지사 취임 후 수술실CCTV 설치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해온 경기도는 파격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병원급 민간병원 중 단 2곳으로부터만 “수술실CCTV를 달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경기도엔 300여개 병원급 의료기관이 있다.
자율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조차 없는 상황에서 보건복지부의 ‘자율설치 우선론’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여론은 수술실CCTV 설치를 적극 반긴다. 경기도가 도민 대상으로 진행한 2차례 조사에선 응답자의 90% 내외가 수술실CCTV 설치와 촬영에 긍정답변을 내놨다. 국회 보건복지위가 지난 3일부터 8일까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쟁점 법안 연구조사를 진행한 결과에서도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 찬성입장이 전체의 89%에 달했다.
수술실에 CCTV를 다는 건 꺼리지만 응급실엔 적극적으로 CCTV를 달아 운영하는 병원 행태에 비판도 쏟아진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딸 이연화씨를 의료사고로 잃고 병원과 소송 중인 이진기씨는 “응급실은 환자로부터 의사들을 지킨다며 CCTV를 달았는데 환자들 동의는 미리 받았느냐”며 “국민 대부분이 수술실에 CCTV를 달라고 하는데 의사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정기국회에서 법안소위를 넘지 못한 환자보호 3법은 다음 국회가 열린 뒤 재논의될 예정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김성호 기자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하겠습니다.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