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日소설 '대망' 수정판 저작권법 위반 아냐″ 파기환송
2020.12.21 09:00
수정 : 2020.12.21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40여년간 일본 전국시대를 담은 소설 '대망'을 번역·판매하다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을 받은 출판사 대표가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내 대형출판사 A사 대표 고모씨(79)와 A사에 각각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사 창립자 고씨는 일본작가 야마오카 소하치가 1967년 집필을 마친 후 현지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출판한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앞부분을 번역해 1975년 4월부터 '전역판 대망 1권'이라는 제목으로 판매해왔다.
A사에서 번역·판매한 '대망 1권'은 회복저작물을 번역한 '2차적 저작물'이기에 1975년 당시 판매가 가능했다. 과거 외국저작물의 2차적 저작물인 경우 원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출판이 가능했으나, 1996년부터는 허가가 필요하도록 저작권법이 개정됐다. 다만 이전 출간된 출판물은 판매를 허용했다.
A사의 경우 1975년판 '대망 1권'은 판매가 가능하나, 대폭 수정·증감해서 발행할 경우 원저작물 저작권자의 허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다른 출판사인 B사가 원저작물 저작권을 취득한 1999년 이후인 2005년 A사가 '대망 1권'의 수정·증감본을 내고, 2016년 3월 1권의 2판 18쇄까지 발행해 회복저작물을 무단복제·배포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은 원저작자의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며 A씨와 출판사를 기소했다.
1심은 "발행기간이 상당히 길고 발행부수도 많은 점에 비춰서 저작권계약을 정식으로 맺은 출판사의 피해가 상당하다"면서 유죄를 인정하고, 고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출판사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2005년판 '대망' 1권을 발행한 행위에 대해 회복 저작물에 관한 저작권 침해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2차적 저작물의 이용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출판사가 2차적 저작물인 1975년판 대망의 이용권한자이고, 2차적 저작물의 번역저작자로서 저작인격권을 갖더라도, 2차적 저작물의 이용권한자는 '저작물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이용행위를 할 것을 필요로 한다"며 "그런데 2005년판 '대망' 1권은 1975년판 '대망'과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로 수정·증감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 대표 역시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1975년판 '대망'을 발행·판매하던 중 예기치 않게 1996년 저작권법 시행으로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은 측면이 있다"며 형량을 각각 벌금 700만원으로 줄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5년판 '대망' 1권이 1975년판 '대망' 1권과의 관계에서 저작권 침해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2차적 저작물의 이용행위에 포함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먼저 2차적 저작물의 이용행위에 포함되지 않으려면 "2차적 저작물을 수정·변경하면서 부가한 새로운 창작성이 양적·질적으로 상당해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을 전제로 할 때 ""2005년판 '대망' 1권은 1975년판 '대망' 1권을 실질적으로 유사한 범위에서 이용했지만,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1975년판 '대망' 1권과 비교할 때 2005년판 '대망' 1권은 현대적 표현으로 수정하거나 번역의 오류를 수정한 부분, 자주 쓰이는 유사한 단어를 단순하게 변경하거나 띄어쓰기를 수정한 부분들이 다수 있으나 양 저작물 사이의 동일성이나 유사성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봤다.
또 "1975년판 '대망' 1권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 부분도 많이 있으나, 이를 제외한 어휘와 구문의 선택 및 배열 등에서 표현방식의 선택을 통한 창작적 노력이 나타난 부분이 다수 있다. 이러한 표현들이 2005년판 '대망' 1권에도 상당 부분 포함됐다"며 "공통된 창작적인 표현들의 양적·질적 비중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