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낯설게 즐긴다, 라면의 무한 변주

      2020.12.23 18:24   수정 : 2020.12.23 20:03기사원문

"아, 배고파. 먹을 거 없나."

한겨울 긴긴 밤에 야식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라면이다. 노란 면발에 빨간 김치 하나 올리면 눈으로도, 입으로도 꿀맛이다. 부록으로 남은 국물에 찬밥 한 그릇 말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진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라면은 좀처럼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나게 먹으면 '제로(0) 칼로리'라고 최면을 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라면' 하면 농심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꼽은 '신라면'을 비롯해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았다. 올해 세계시장 점유율 5.7%(전망치)의 세계 5대 라면회사로, 라면이 일본 내지 중국의 음식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라면 좀 끓인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나만의 '라면 레시피'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농심의 라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레시피로 '맛있는 라면'에 도전해볼 참이다. 우리 입맛에 익숙한 신라면과 '오징어짬뽕' '짜파게티' '너구리' '안성탕면'이 어떤 맛,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신라면 투움바'는 인터넷 포털에서 '신라면 레시피'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받았다는 얘기다. SNS에서의 인기 덕분에 해외에서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서 만들었다. 일단 냄새가 굉장히 좋다. 침이 꼴딱 넘어갈 정도다. 음식을 만든 아내도 '와우'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맛도 좋다. 어느 레스토랑에서 먹은 투움바 파스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문제는 여섯 번째 젓가락질부터였다. 느끼함이 코로, 입으로 넘쳐 들어왔다. 대한민국 40대 아저씨의 한계다. '토마토 소스였다면…' 하는 부질없는 바람이 솟아났다. 결국 옆에서 군침을 흘리는 아내에게 젓가락을 양보하고야 말았다. 다음에 다시 신라면 투움바에 도전한다면 우유도, 버터도, 치즈도 반만 넣을 테다.

참지 못하고 '원조' 신라면을 하나 끓여서 김치까지 얹어 먹은 건 비밀이다. 역시 신라면은 이 맛이 제일이다. 30년을 넘게 먹었는 데도 전혀 질리 지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원조' '기본'을 찾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신라면 투움바는 신라면이 아주 지겹게 느껴질 때나 한 번씩 먹을란다. 언제 그런 날이 올 지는 모르겠다.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은 어느 국물에 넣어도 실패하지 않는 '만능 치트키'에 가깝다.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시즌 한정' 재료여서 기대치가 더 높아진다. 굴은 스테미나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한 번에 12개씩 하루 4차례 굴을 챙겨 먹었다고 한다. 최근 기력이 쇠한 듯해서 카사노바보다 조금 더 많은 15개를 넣기로 한다.

'오짬'이라고 줄여서 불리는 '오징어짬뽕'은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감칠맛이 더해져 술 마신 다음날 얼큰한 국물로 속을 달래는 데는 이 만한 '걸작'이 없다. 봉지에 '구운 오징어 풍미'라고 쓰여진 후 더 맛있어졌다.

후레이크(건더기스프)에는 구운 오징어 말고도 미역과 양배추, 버섯 등이 실하게 들었다. 오짬을 먹을 때 건더기는 일부러 남겨서 면을 다 먹은 후 한 입에 털어넣기를 권한다. '라면 건더기도 씹는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맛있는 재료 두 개가 합쳐졌는데 맛이 없으면 이상한 거다. 불기 전에 면부터 해치우고, 굴과 건더기를 순서대로 먹는다. 김치가 필요 없을 만큼 맛나다. 다음에는 남길지언정 꼭 두 개를 끓이리라 다짐해본다.

굴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대하를 넣어도 좋다. 한때 소래포구에 가서 대하 한 박스를 사다 냉동실에 쟁여놓고, 라면 끓일 때마다 서너 마리씩 넣어 먹었다. 이 또한 '한 번 먹으면 영원히 잊지 못하는' 그런 맛이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조합한 '짜파구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한 레시피는 다를 줄 알았는데 별반 다르지 않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다. 혼자서도 거뜬하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이 있다.

다만, '약간 매운 짜파게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영화 '기생충'에서 조여정 배우가 먹던 '채끝 짜파구리'는 고기씹는 맛이라도 있지, 그냥 짜파구리는 특별함이 없다"고 투덜대보지만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한다. 한참이 지나 "라면 두 봉지 합해봐야 2000원도 안 되는데 100g에 만원이 넘는 한우 채끝이 말이 되냐"는 타박이 돌아올 뿐이다.

짜파구리는 일부러 찾아서 먹을 정도는 아니다. 맛있는 두 라면의 특징마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짜파게티 따로, 너구리 따로 먹는 게 훠~얼씬 낫다. 짜파게티 남은 국물에 계란 풀어 밥 볶아 먹어 본 사람, 너구리에 밥 한 공기 말아서 먹어본 사람이면 이해하리라.

며칠 후 아내가 집을 비운 틈을 타고 채끝 짜파구리를 집에서 손수 끓여 먹었다. 그것도 무려 1+등급의 한우다. 먹방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서 개그맨 김준현이 조리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채끝을 구울 때 마늘을 비롯한 야채 듬뿍 넣고, 면은 따로 삶는다. 채끝이 익어갈 때쯤 면을 건져 함께 볶는다. 채끝과 면이 익는 시간을 딱 맞추는 게 쉽지는 않다. 짜파게티 스프는 하나를, 너구리 스프는 반만 넣는 게 적당하다. 마지막에 참기름 한번 휙~ 두르면 향도, 맛도 그만이다. 역시 짜파구리는 채끝이 들어가야 작품이 된다. 혼자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동안 안성탕면은 끓여먹는 게 아니라 생으로 부셔 먹는 걸 즐겼다. 아내와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 마실 때 마땅한 안주가 없으면 으레 안성탕면이 빈 자리를 채우곤 했다.

'파채안성탕면'은 올해 초 한 예능프로그램 '강호동의 라끼남'에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아내는 "삼겹살이 들어간 라면을 느끼해서 어떻게 먹냐"고 벌써부터 타박이다. 하지만 기대해도 좋다. '먹다 남은 프라이드 치킨을 넣어서 끓인 안성탕면'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레시피대로 따라가는데 진짜 냄새부터 사람을 홀린다. 살짝 덜 익은 면을 즐기는 관계로 3분여 만에 불을 껐다. 파기름을 내서 그런지 풍미가 장난이 아니다. 은은한 파향이 라면 전체를 감싼다.

먼저 파채와 라면을 함께 먹으니 '오호라'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이번에는 탱탱한 면발에 삼겹살 하나 겹쳐 먹었다. 걱정했던 느끼함은 1도 없다. '인생라면 찾았다'는 어느 블로거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파채안성탕면을 먹고 나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볶음밥이 꼭 생각날 거다. 나도 처음엔 삼겹살에 라면까지 먹으면 그만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먹다보니 '이건 딱 볶음밥 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결국 진한 국물에 김 가루까지 넣어서 야무지게 볶아서 먹었다. '파채안성탕면 후 볶음밥'은 진리다.


컵라면으로 만드는 '신라면 볶음밥'은 야식으로 훌륭하다. 아내는 "이 밤에 그렇게 먹으면 살찐다"고 구박하지만 '컵라면 하나로는 조금 부족하다' 싶을 때 만들어 먹으면 적당하다. 떠올리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오래 전 군대에서 먹던 '뽀글이'가 생각난다. 뽀글이에 계란과 밥을 섞어서 만든 메뉴라고 생각하면 된다.

꼭 신라면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선호에 따라 좋아하는 컵라면으로 만들어도 될 듯하다. 다음에는 '튀김우동'으로 한 번 먹어보련다. 상대적으로 국물맛이 강하지 않아 더 괜찮을 것 같다.

레시피에는 없지만 마지막에 참기름을 한 번 둘렀더니 냄새도 너무 좋다. 참고로 밥을 넉넉하게 넣는 게 좋다.
눈대중으로 밥을 넣었는데 적게 넣은 건지 조금 짜기도 하고, 볶음밥보다 라면맛이 강하다.

라면 레시피는 누들푸들을 참고하면 된다.
전문 셰프와 농심 연구원들이 개발한 약 1000개의 조리법이 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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