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대 정부, 누가 이길까
2020.12.29 13:30
수정 : 2021.01.27 10:0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플랫폼이 전성시대를 맞았다. 플랫폼이 없으면 하루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미국인한테 물어보라.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없는 세상이 가능하겠는가. 중국인한테 물어보라. 알리바바, 텐센트 없는 세상이 상상이나 되는가. 한국인한테 물어보라. 네이버, 카카오 없이 살 수 있는가.
동시에 플랫폼은 수난시대를 맞았다.
작용 VS 반작용, 미국의 경우
한쪽이 너무 세면 그에 맞서는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작용ㆍ반작용의 원리는 만고의 진리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이 시장을 꽉 틀어쥐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종종 맛집 가운데 손님을 막 대하는 곳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땐 제3자가 나서서 질서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을 보자. 미 의회는 1890년 이른바 셔먼법을 만들었다. 법안을 주도한 존 셔먼 상원의원(1823~1900년)의 이름을 땄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철도, 석유 등 핵심산업에서 독과점이 기승을 부렸다. 우리가 잘 아는 석유왕 존 록펠러,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같은 인물이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이던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된서리를 맞았다. 미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을 34개 작은 회사로 쪼갤 것을 명령했다. 여기서 엑슨, 모빌, 아모코, 셰브론 같은 회사들이 떨어져나왔다(엑슨과 모빌은 1999년에 합쳐서 엑슨 모빌이 된다). 스탠더드 오일을 쪼갠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당시에 초거대기업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1982년 미국 정부는 통신 공룡 AT&T를 반독점으로 물고 늘어졌다. 이때 마벨(엄마벨) AT&T에서 7개 베이비벨이 나왔다. 베이비벨은 미국 전역을 7개 권역으로 나눠가졌다. 우리 귀에 익은 버라이즌은 베이비벨 중 하나인 벨 애틀란틱이 인수합병을 거쳐 이름을 바꾼 케이스다.
1998년엔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셔먼법 위반으로 걸었다.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계 윈도에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끼워 판 것이 경쟁을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와 익스플로러를 패키지로 판 것은 혁신의 결과이며, 이는 소비자한테도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사건은 2001년 양쪽이 절충안을 마련하는 선에서 종결됐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는 분할을 면했다.
그리고 이젠 플랫폼 기업들이 도마 위에 오를 차례다. 지난 10월 법무부는 검색시장의 절대강자인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12월초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페이스북에 태클을 걸었다. FTC는 페이스북이 인수한 인스타그램을 문제 삼았다. 페이스북이 미래의 경쟁자를 인수함으로써 경쟁의 싹을 미리 제거했다는 것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스탠더드 오일, AT&T처럼 회사가 쪼개질지, 아니면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법정밖 합의에 이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부에 꼼짝 못하는 알리바바
미국에 비하면 중국은 정부가 철권을 휘두른다. 그 앞에서 플랫폼 기업들은 한마디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전문가들은 21세기 세계 경제를 자본주의가 통일했다고 본다. 다만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자본주의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시장중심과 국가중심 사이엔 여전히 큰 간격이 존재한다.
엄격한 당국자의 눈에 알리바바 창립자인 마윈은 좀 설쳤다. 마윈은 2014년 뉴욕증시에서 요란한 기업공개(IPO) 세리모니를 가졌다.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이 뉴욕 증시로 온 것도 이채로웠다. 마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역대급 자금(250억달러·약 27조원)을 긁어모았다. 이때만 해도 중국 정부는 눈을 감았다. 당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라 미국과 사이가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다 결정적 ‘실언’이 나왔다. 마윈은 지난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 포럼에서 “당국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정책을 취하며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흔히 이럴 때 정치판에서 쓰는 용어로 싸가지가 없다고 한다. 옳은 말이지만 윗사람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미국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중국은 달랐다. 11월 초 인민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마윈을 소환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비밀이다. 다만 그 직후 알리바바의 계열사인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가 전격 취소됐다. 앤트그룹은 알리페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리바바의 핵심 계열사다. 원래 앤트그룹은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 동시 상장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를 능가하는 IPO 기록을 세운다는 야심에 불탔다. 그 꿈은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중국 정부는 혁신의 아이콘 마윈에게 제대로 한방을 먹였다. 미국처럼 번거롭게 법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불러서 통보하면 끝이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이 플랫폼 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이중적이다. 혁신을 생각하면 박수를 쳐야 하지만 표를 생각하면 매를 들어야 한다. 모빌리티 혁신의 개척자로 나선 타다는 끝내 정부와 정치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모빌리티 플랫폼의 꿈은 피기도 전에 시들었다. 그 과정에서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정부와 정치권에 할 말, 못할 말 다했다. 그래도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적어도 한국은 중국식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 플랫폼공정거래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여기어때 같은 플랫폼이 적용 대상이다. 플랫폼이 제멋대로 시장 질서를 깨지 못하도록 규제 그물망을 까는 작업이다. 미국은 있는 법(셔먼법)을 동원했지만 우린 새 법을 만드는 게 다를 뿐이다.
배달앱 배민엔 벌써 견제구가 들어왔다. 공정위는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가 우아한형제들(배민 운영사)을 인수하려면 먼저 DH가 운영하는 요기요부터 팔 것을 주문했다. 배달앱 시장에서 배민이 1위, 요기요가 2위다. 딜리버리히어로는 공정위 요구대로 요기요를 팔고 배민을 인수하기로 했다. 언론은 배민과 DH가 백기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네이버를 보는 시각은 찬사와 공포가 교차한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 유통망이 열악한 소상공인에게 온라인 좌판을 깔아준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네이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을수록 예속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심지어 대형 은행, 증권사들도 결국은 네이버 금융의 입점업체로 전락하지 않을까 애면글면한다.
금융감독원은 올 여름 ‘네이버 통장’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마치 네이버를 은행으로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통장은 미래에셋대우가 네이버파이낸셜과 손잡고 발행하는 종합자산관리(CMA) 계좌다. 실제 통장을 발행하는 곳은 미래에셋대우다. 금감원은 이름을 바꾸라고 좋게 일렀다. 네이버는 통장 이름을 ‘미래에셋대우CMA 네이버통장’으로 바꿨다. 글쎄, 사람들은 과연 이걸 증권사 CMA 통장으로 볼까 아니면 여전히 네이버 통장으로 볼까.
금융당국은 제도권 금융 바깥에서 판을 흔드는 네이버를 예의주시하겠단 입장이다. 9월엔 기존 금융사와 네이버 같은 빅테크가 모이는 디지털금융협의회가 출범했다. 금감원은 빅테크 종합 감독방안을 손질하는 중이다. 금융은 거대한 기득권이다. 정부 라이선스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정치권 내 영향력도 무시 못한다. 네이버가 금융을 넘볼 땐 신중하게 처신해야 뒤탈이 없다.
지자체도 플랫폼에 눈독을 들인다.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내놨고, 경기도는 얼마전 공공 배달앱 ‘배달특급’을 선보였다. 제로페이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를 당할 수 없다. 배달특급은 배민을 당할 수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지자체장들이 왜 자꾸 플랫폼에 욕심을 부리는 걸까. 시장을 장악한 민간 플랫폼 독점에 뭔가 불만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플랫폼의 미래는
소비자 후생을 맨앞에 두면 플랫폼 기업은 그냥 놔두는 게 최선이다. 비록 독점이라도 소비자가 원한다는 데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검색은 꼭 구글에서 하라고 누가 팔을 비트는 게 아니다. 그냥 구글이 편하고 좋으니까 한다. 뉴스는 꼭 네이버에서 보라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편하니까 네이버에서 본다.
하지만 힘이 너무 세지면 꼭 힘자랑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구글이 앱을 다운받는 구글플레이에서 수수료 30%를 물리는 인앱결제를 의무화하겠다고 나선 걸 보라. 인앱결제는 자릿세다. ‘사악한 짓을 하지 않겠다(Don't do evil)’던 창업 초기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연초 다보스포럼에선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대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새로운 조명을 받았다. 기업이 돈을 벌되 주주는 물론 종업원, 협력사, 지역공동체까지 두루 염두에 두라는 얘기다. 탐욕에 찌든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이다. 곡예하듯 오토바이를 타는 플랫폼 노동자의 인권, 노동권은 벌써 사회문제가 됐다.
플랫폼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정부 아니라 정부 할아버지가 와도 그 흐름을 막지 못한다.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를 괴롭힐 순 있지만 알리바바가 중국 사회에 심은 혁신은 거기 그대로 있다. 다만 상생을 무시한 채 오로지 혁신만을 추구하면 종종 매질을 당할 수 있다. 앞으로도 여러 나라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플랫폼과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될 공산이 크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새겨야 할 격언이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혁신 80%, 상생 20% 정도로 에너지를 배분하면 어떨까. 혁신 70%, 상생 30%면 더 좋고.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