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 접근금지기간 끝나자 5살 아이에게 지옥이 시작됐다
2021.01.07 07:00
수정 : 2021.01.07 10:26기사원문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당시 어린아이가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공포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신모씨(26·여)는 가정폭력을 이유로 남편과 헤어진 뒤 남편의 지인인 이모씨(29)와 만났지만 가정 내 폭력은 이어졌다.
이씨는 아동복지법위반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법원은 접근금지 명령도 내렸다. 하지만 이씨는 접근금지기간이 끝나자 다시 아이들을 보호시설에서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은 학대에 따른 부상과 영양결핍 등을 회복해 신체적으로는 건강이 양호했지만, 후유증으로 인해 아직 정서적으로는 불안하고 언어발달도 다소 지체된 상태였다.
이씨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아끼고 보살폈어야 하는데도, 다시 아이들을 학대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오히려 본격적인 학대를 시작했다.
이씨는 A군(당시 5세)에게 음식을 주지 않거나 혼자만 집에 있게 했다. 둘째(3세)와 셋째(2세)에게도 온종일 한 끼 식사만 주는 등 방임행위를 저질렀다. 자신이 A군을 때리는 모습을 나머지 아이들에게 지켜보게 하기도 했다.
A군에게는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신장 172㎝, 체중 90㎏의 건장한 체격인 이씨는 신장 110㎝, 체중 16㎏에 불과한 A군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폭행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분씩 지속됐다. 흉기를 휘둘러 위협하는가 하면 A군을 자신이 기르는 개와 함께 화장실에 가두기도했다.
특히 이씨는 목검으로 A군의 엉덩이 등 전신을 100회 이상 때린 뒤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A군은 두개골 골절로 머리가 부풀었고, 머리 내부의 혈액이 눈 주변으로 내려오는 일명 '배트사인'까지 나타났다.
더 끔직한 일은 지난 2019년 9월25일 일어났다. 오전 9시쯤 이씨는 A군을 들어 올려 방바닥에 여러 차례 집어던졌고 일어서려는 A군의 다리를 걷어차고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같은날 오후 10시30분에는 A군의 팔과 다리를 몸 뒤쪽으로 활처럼 묶어 방치했다. A군은 구타로 인해 심각한 상해를 입고 탈진상태였다. 결국 다음날 오후 10시쯤 사망했다.
발견 당시 A군은 얼굴, 가슴, 어깨, 다리 등을 포함한 전신에 광범위한 멍이 있었고,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뽑혀 있었다. 간, 신장, 장간막, 후복막강 등 복부에도 치명적인 손상이 발견됐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폭행한 사실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훈육을 위한 것이었다"는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 사망 당일 A군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스스로 119에 신고하고 가슴압박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씨가 A군의 사망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미필적으로나마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고은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 "A군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순간적인 분노나 스트레스 등 감정 해소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학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어린아이가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공포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며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쓸쓸하게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의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도 명했다. 검찰과 이씨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는데 2심에서 형량이 바뀌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성수제 양진수 배정현)는 "이씨가 아이들을 학대한 행위는 우발적이거나 1회적인 범행이 아니고 A군의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감각하게 학대행위를 계속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또 "이씨는 스스로 감당하지도 못할 양육 의무를 부담하겠다고 자처하기보다는 아이들이 분리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아이들의 성장과 복리에 긍정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1심보다 징역 3년을 올린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도 양측은 불복했고, 사건은 6일 대법원에 접수돼 3번째 법의 판단을 받게 됐다.
앞서 친모 신씨는 폭행을 당한 A군이 숨질 때까지 방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을 확정받았다.
신씨는 이씨를 몇 차례 소극적으로 만류한 것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씨가 외출했는데도 생명이 위태로운 A군을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잠을 자거나 방에 누워 휴대폰만 한 것으로 조사됐다.
A군이 감금됐을 때는 3일간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A군을 감시하거나 나머지 가족들과 외출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씨가 A군을 폭행할 때는 목검을 건네며 방임행위를 넘어 잔혹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은 '혐의 적용' 면에서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사는 정인양 사건과 비교된다. 장기간 학대로 16개월 영아를 숨지게 한 정인양의 양모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양부는 방임과 방조 등 혐의를 받는다.
반면 이씨의 경우 경찰이 애초 아동학대치사죄로 긴급체포했으나, 살인으로 죄명을 변경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살인, 상습특수상해, 상습아동유기·방임, 상해, 상습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신씨는 살인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검찰은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