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무시한 선동정치 '탄핵' 기로… 4년뒤 재선길 막히나
2021.01.10 16:57
수정 : 2021.01.10 16:57기사원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의 성전'과도 같은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의 광기를 고스란히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의사당벽을 넘은 트럼피즘이 무너지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교주처럼 대중선동의 귀재
트럼피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트럼프 대통령은 비판론자들에겐 '천박한 막말꾼', '독불장군' 등 각종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찍혔지만, 지지자들에겐 더없이 '사이다' 같은 존재다.
지지여부나 선호도를 떠나서 봐도 현재 트럼프 대통령만큼 강력한 이미지와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은 없다. 대선에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월 29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성' 1위에 올랐다. 무려 12년간 1위를 차지해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처음으로 밀어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될 조 바이든 당선인은 3위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기는 화려한 화술과 트위터다. 단 두 가지로 그는 대통령 자리에도 올랐고, 트럼피즘이라는 어마어마한 세력도 불렸다. 수려한 말빨과 선동을 통한 세력 모으기는 사이비 교주를 연상케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보다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는 법을 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거물이자 유명 TV 쇼를 오랫동안 진행한 '셀렙' 출신이다. 2016년 대선 출마 전까지 NBC의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했다.
'가장 힘든 면접'이라고 불리는 어프렌티스는 16~18명의 참가자들이 트럼프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두고 경쟁한다. 트럼프가 참가자 중에서 한 명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중독자'다. 기성 언론을 불시하고 트위터를 통해 대중을 상대로 직접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온갖 막말들이 여기에서 쏟아졌다. 한밤 중이나 새벽에도 할말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 때문에 직무 대신 트위터에 매진한다는 비판도 받았었다. 종잡을 수 없이 튀는 행보에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정치권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직을 리얼리티쇼인줄 안다"고 지적했다.
■'4년 더'에서 '4년 뒤'로 전략 수정
이번 의사당 난입 사건이 바이든 당선인에게 심각한 이유는 극렬 트럼프 지지자들의 일회성 일탈 행위로만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동 정치'의 씨앗을 심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치권에선 "단 하루도 더는 못 참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당장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일 종료된다.
미치 매코널 미국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를 '폭력배'와 '폭도'로 규정했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들이 저지른 불법행위를 비판하는 데는 어떠한 주저함도 없었다.
백악관 참모들은 줄줄이 사직서를 냈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매슈 포틴저 부보좌관, 크리스 리들 백악관 부비서실장 등도 사임을 고려 중이다고 한다. 퇴임을 불과 열흘 앞두고 벌어진 굴욕이다.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중단이라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의회에 난입한 시위대에게 해산을 권유하면서도 이들을 "위대한 애국자"라고 묘사했고, 동영상 메시지를 올려 "매우 특별하다"라고 치켜세우는 등 폭력을 조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들 트윗은 차단 조치됐다.
페이스북도 트럼프 대통령이 2주 가량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7일 평화적 정권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최소 2주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부과된 정지 기간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에게 우리의 서비스를 계속 쓰도록 하는 위험이 너무 크다고 본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히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에게 졌지만 47% 득표율로 7400만표를 받았다. 과거 최다 득표 기록이었던 2008년 오바마 전 대통령의 6900만표를 넘는 수치다.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에 2%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구호는 '4년 더'에서 '4년 뒤'로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이 확정된 의회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 인증 직후 오는 20일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은 바꾸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위한 싸움은 시작일 뿐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2024년 대선 재도전 가능성 열어둔 셈이다. 특히 불평등한 '대선 조작의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을 지지층 결집에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