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연주 앞둔 김선욱 "베토벤에게 최고 존경을, 그리고 자유롭고싶다"
2021.01.11 13:44
수정 : 2021.01.11 14:0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베토벤스페셜리스트란 호칭은 별 의미가 없다. 나는 그 수식어가 억울하다."
뜻밖이었다.
2020년 김선욱은 코로나19가 낳은 비련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공연날짜는 국내 1,2,3차 코로나 대유행 시기와 정확히 겹쳤다. 누가 작정하고 잡기도 힘든 일정이었을텐데 결과적으로 그랬다. 3월 예정됐던 리사이틀은 8월, 12월 연기와 취소가 그대로 반복됐다. 3월엔 출발직전 독일 베를린 집에서 연기 결정이 나 다행히 비행기를 안타도 됐지만 8월엔 귀국후 공연이 연기됐다. 허탕치고 돌아간뒤 11월 다시 왔다가 지금까지 대기중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결국 이제 무대의 시간이 됐다는 사실이다.
■ 긴장·희열…연습에 연습 "하루가 너무 짧아"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부근에서 그를 만났다. 긴장과 희열, 분주함과 각오가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하루가 너무 짧아요. 연습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프로 연주자로 내 가치가 무너지게 할 순 없어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 잡힌 리사이틀(11일 롯데콘서트홀)까지 연습할 시간이 사흘 남았고, 바로 다음날(12일 롯데콘서트홀)이 대망의 국내 지휘 데뷔일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뒤(19일 롯데콘서트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듀오공연을 치른다. 이어 대학 은사 김대진 교수와 오케스트라 지방 투어까지 잡혀있다. 소화해야하는 곡이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3곡부터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베토벤 교향곡7번, 브람스 바이올린소나타 전곡, 그리고 더 있다.
무대는 평소실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지 않으면 누구보다 연주자 스스로가 못견딘다. 방역당국의 거리두기 격상지침으로 KBS교향악단과 함께할 지휘곡은 공연 일주일을 앞두고 달라졌다. 수개월간 준비해온 브람스 교향곡2번은 출연진이 최소 70명이다. 트롬본, 튜바, 호른 등 관악 주자들이 상당하다. 50명미만으로 줄여야해서 선택된 곡이 베토벤 교향곡7번이다. "지휘는 연주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가 오케스트라와 잡힌 첫 리허설은 9일. 그리고 사흘뒤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이런 촉박한 일정이 연주 승패에 이유가 돼선 안된다고 그는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웃는다. "훗날 코로나시대 제게 가장 기억에 남을 시간이 바로 딱 지금입니다."
■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 새로운 '끝과 시작'
돌아보면 코로나로 불우한 시간의 연속이긴했으나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무대의 재발견이 무엇보다 뜻깊다. "청중이 너무 그리웠다. 무관중 연주를 몇번했는데 아쉬움과 답답함이 이루 말할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실제 공연장에서 만들어지는 흥분, 열기, 설렘, 그 숨소리의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두좌석 띄어앉기 객석이어도 무관중과 유관중은 하늘과 땅차이다. 그러니 지금 닥친 국내 폭풍 일정과 이후 파리·베를린 등 유럽 공연장서 치르게 될 밀린 숙제들에 마음은 빠듯하면서도 넘치는 기쁨일수밖에. 그는 당장 내달 파리 샹젤리제극장에서 독주회와 듀오, 트리오 콘서트를 잇따라 갖는다. 하이든, 슈베리트, 쇼팽, 프로코피에프 등 레퍼토리도 줄줄이다.
베토벤으로 다시 돌아가자. 그의 11일 리사이틀은 온전히 베토벤곡으로 채워져있다. 안단테 파비오로 시작해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을 인터미션없이 바로 연타한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던 시기 극한의 고독과 싸우며 완성한 불후의 명곡이다. 김선욱은 이 곡들을 자신의 새로운 '끝과 시작점'으로 마음먹고 있다.
"이 후기 소나타 3곡들에 온힘을 다해 작곡가에게 보내는 최고의 존경을 담을 겁니다. 베토벤은 시대와 시대를 이어준 다리였습니다. 베토벤이 창조한 놀라운 작곡기법은 후대 작곡가들이 더 많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였잖아요. 저에게도 베토벤 말년의 소나타가 하나의 시작점이 되길 바랍니다. 남은 길고긴 예술인생의 또다른 페이지가 열리길 기대합니다." 진중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다짐이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