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하면 승진 못한다" 아베스 8년이 바꾼 관료사회
2021.01.17 20:54
수정 : 2021.01.17 20:54기사원문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2006년~2007년 아베 1차 내각 때 총무성 대신(장관)으로 NHK개혁에 시동을 걸 때였다.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장관 자리'는 정치인의 몫이다. 대신, 부처내의 주요 의사결정, 인사권은 그 부처 출신 차관이 장악한다. 정치인과 관료간의 균형점이 존재했으며, 이는 엘리트 관료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다.
이 과장은 정치인 장관이 뭐라고 떠들든 당시 총무성 내 공직사회 최고봉인 차관 라인의 '공기'를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저서 '정치가의 각오'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일개 과장이 멋대로 발언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경질하라." 담당 과장은 스가 장관이 총무성을 떠나고 난 뒤에야 자기 부처로 복귀할 수 있었다. 스가 총리는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인사권을 사용했다"고 적었고, 실제 당시의 경질 사건을 관료사회를 향한 '공포정치' 수단으로 삼았다. 지난해 10월 개정판 제목에선 빠졌지만, 2012년 3월 처음 출간됐을 때에는 '관료를 움직이게 하라'라는 부제가 따라붙었었다. '관료사용법'의 요체인 '인사권 장악'의 서막이었다.
■ 인사권 행사의 중추...'내각인사국'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이 출범하면서 스가는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청와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에 올랐고, 각 부처 차관을 정점으로 움직여 온 일본 관료사회의 수직체계를 타파하겠다며 2014년 봄 관방장관 취하에 내각인사국을 설치했다. 선출직 총리가 주도하는 '정치주도', 다른 말로는 '관저주도', 한국식으로는 '청와대 주도'를 위해 공직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인사를 장악한 것이다. 스가 총리가 정치스승으로 받드는 고 가지야마 세이로쿠 전 관방장관(현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의 아버지)은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관료는 설명 천재다. 정치가는 이내 놀아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관료들에게 포위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각인사국.' 아베·스가 두 정권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각 부처 간부급 공무원 600명의 인사 명부가 스가 장관 손에 쥐어졌다. 이곳에서 "노우(No)"하면 승진 배제다. 스가는 관방장관이 된 후 '스가표 대표 정책' 중 하나인 '고향납세' 도입에 신중론을 제기한 총무성 담당국장을 좌천시킨 바 있다. 총무성 내에선 '목이 잘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아베 정권의 또 다른 관료 장악 수단은 다름아닌 '관저 관료'들이었다. 이는 스가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전직 관료(OB)들이 관저 관료로 변신, 친정인 출신 부처를 움직였다. 아베 정권 때 이마이 다카야 정무비서관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수출규제 등 대한 강경론을 주도한 그는 2007년 아베 전 총리가 지병으로 인해 1년 만에 총리직에서 첫번째로 불러났을 무렵,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던 아베 전 총리와 등산을 함께 다녔고, 이후 2차 내각에서 정권의 실세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 '재팬 애즈 넘버원' 주도했으나
일본 관료사회의 쇠락은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와 함께 시작됐다. 전후 일본 경제는 분명, '오쿠라쇼'로 불린 대장성(현 재무성), 통산성(경제산업성)관료들의 무대였고,이들의 손에서 고도 성장의 밑그림이 설계됐다. 동아시아 연구 석학으로 최근 작고한 에즈라 보겔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 1979년 출간)에서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의 요인 중 하나로 "사명감을 가진 엘리트 관료의 역할이 컸다"고 제시했다. 패전 직후인 1950~60년대. 일본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이 뜨거웠던 시기를 작가 시로야마 사부로는 '관료들의 여름'이라고 칭했다. 당시 실존했던 통상관료들의 얘기를 동명 소설로 그려냈다.
정치인 장관과 관료 차관간의 역할분담이 분명했던 시기였다. 이들은 기업인들과 '철의 삼각형'을 이루며, 성장의 결실을 공유했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합의를 기점으로 일본 경제는 침체기에 들어섰고, 잇따라 터진 대장성 관료들의 부패 스캔들에 열도가 들끓었다.
그리하여 관료제에 대한 수술이 본격화 됐다.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1996년~1998년)을 기점으로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정권을 거쳐, 아베 정권에서 내각 인사국 설치로 정점을 찍게 된다. 그리고 그 중간에 스가 현 총리가 위치한다.
일본 정가의 한 소식통은 "스가 총리는 자신의 말을 거역하거나 직언을 하는 관료들은 가차없이 날려버리는 특성이 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 조차 임기 말에는 인사를 통해 관료사회의 정보를 틀어 쥔 스가를 견제했다고 할 정도다.
■공무원 정치화 '손타쿠'아베에 부메랑
촌탁(忖度)', 일본어 발음으로는 '손타쿠'다. 2017년 그해의 유행어로 꼽힌 뒤 현재까지 일본사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윗사람의 구체적 지시가 없어도 그 의중을 헤아려, 알아서 긴다'는 뜻이다. 아베·스가 정권 하에서 무력화된 공직사회와 정치화된 관료들의 행태를 꼬집은 말이다.
총리관저에 밉보였다가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공무원들이 '알아서' 기기 시작했다. 아베 정권 최대 스캔들 중 하나인 모리토모 학원 비리 사건 당시 재무성의 문서 조작 사건이 손타쿠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다. 공직사회 개혁에 나섰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조차 "(재무성이 아베 총리를 위해)손타쿠를 한 거다"라고 깊은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아베 전 총리와 같은 호소다파 소속인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도 가케학원과 모리토모 학원 비리와 관련, "각 부처의 중견 이상 간부는 모두 스가 관방장관의 얼굴색을 보면서 일을 하고 있다"며 "부끄럽다. 국가의 파멸에 가까워지고 있다"(2017년 8월)고 독설을 퍼부은 바 있다. 후쿠다 전 총리는 내각인사국에 대해 "정치인이 (공무원의)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아베 내각 최대의 실패다"라고 비판했다.
부작용은 속출했다. 후생노동성 공무원들은 아베노믹스에 불리한 통계를 막고자 통계조작에 손을 댔고, 내각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갑자기 생산성 전망치를 전년의 2배로 끌어올렸다. 아베 전 총리에게 밉보인 재무성은 경산성 출신 관저관료 이마이 비서관의 독주체제 속에 소비세 인상 연기 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채 끌려다녔다. 이의를 제기하면 좌천이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2일 외무성 전직 관료가 외무성 후배에게 관저 주도로 외교가 진행되는 것을 우려하며, 관저에 진언할 것을 요구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선배 시대와는 다르다"였다고 전했다. 공무원들의 입에 재갈이 물린 것이다.
아베·스가 정권 도합 8년, 재무성 출신의 다나카 히데아키 메이지대 교수는 현재 일본 관료사회를 일컬어 한 마디로 '관료들의 겨울'이라고 규정했다. 과거 '관료들의 여름'에 대비한 말이다.
그는 저서 '관료들의 겨울'에서 아베 2차 내각 당시 각종 경제 관련 회의체들이 이전 정권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며, "대부분 분석, 검증 없는 정책들로 '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앞세우는 방식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런 경고는 곧 현실화 됐다. 정권 퇴진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지난해 일본의 코로나 1차 확산기, 소수의 경산성 출신 관저 관료들과 이들에게 포위된 아베 총리는 경제회복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방역을 실기했고, 이어서는 우왕좌왕했고, 즉흥적 정책들을 쏟아냈다. 문부과학상(교육부 장관)도 모르는 휴교령을 내놓았으며, 민심과 동떨어진 '아베노마스크'에서 절정을 이뤘다.
"정치가가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면, 관료는 구체적인 처리안을 제공한다." 스가 총리가 밝힌 정치주도 행정개혁의 핵심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가스미가세키(관가 밀집지역)가 정책 설계자의 역할을 내려놓고,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고도성장을 경험하고, 일본 관료제와 가장 유사하다는 한국 공직사회의 쇠락과도 맞닿은 듯 하다.
<용어설명>
*내각인사국은 관저 주도 행정과 공직사회 수직체계 타파를 목적으로 지난 2014년 일본 총리 보좌기구인 내각 관방에 설치됐다. 중앙부처 간부 600명의 인사가 이곳에서 관리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