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2021.01.18 18:00   수정 : 2021.01.18 18:00기사원문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였던 104세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지난 2018년 고향을 떠나 존엄사가 허용된 스위스를 찾아가 약물주사를 맞고 생을 마감했다. 구달 박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선택할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 부분 환희의 송가일 것이다"라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국내에서 연명의료 결정제도(존엄사)가 시행된 지 3년이 훌쩍 지났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18일 공개한 지난해 말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 숫자는 거의 80만명에 달했다. 실제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임종기 환자도 13만5000명에 이르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는 "나의 건강이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게 되면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의료를 거절하여 주기 바랍니다"라고 기술돼 있다.

설령 이 같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실제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노인들이 마지막을 맞이하는 요양시설 중에는 윤리위가 없는 곳이 대다수다.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더라도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연명의료 중단을 강제할 방도가 없다. 당사자의 의사가 시스템적으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경직된 우리의 임종문화 현주소다.

이른바 '웰다잉'(Well Dying)이 화두다.
온몸에 줄과 관을 달고 버티는 게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고통의 연장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죽을 권리가 먼저냐, 생명윤리가 먼저냐는 묵은 논쟁보다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의료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인간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갖춘 임종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의 말을 곱씹어본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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