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정치의 덫
2021.01.18 18:00
수정 : 2021.01.18 20:32기사원문
20년 집권을 호언하던 임기 초의 기세는 시나브로 잦아들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대선 지지율(41%)을 밑돌면서다. 여당 지지율이 야당(국민의힘)에 역전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호사화(호남·40대·화이트칼라)'로 요약되는 핵심계층을 중심으로 살을 붙인 지지층의 두터운 저변이 흔들리는 현상이다.
여권의 지지율이 가라앉는 계기는 몇 차례 있었다. 재작년 '조국 사태'가 변곡점의 하나였다. 온갖 흠결에도 '내 편은 늘 옳다'며 임명을 강행하다 역풍을 맞았다. 지난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고 한 시도도 그랬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여겨지면 "우리 총장님"도 적폐로 모는 오만에 민심은 요동쳤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대상으로 한 추상같은 적폐청산을 조용히 지켜보던 이들의 시선이 왜 싸늘해졌겠나. 어느 순간 정권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집권 3년6개월여 쌓인 신적폐에 대해 현 정부가 이중 잣대를 보이자 중도층부터 돌아섰다는 얘기다. 강준만 교수가 책('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현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정리하다가 말았다며 "굳이 지적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중도층 이탈에 이어 핵심 지지층의 동요 징후도 감지된다. 부동산 대참사가 주요인이다. 서민의 내집 마련 꿈을 빼앗고, 1주택자들에게도 '세금폭탄'을 안기자 이념적 성향을 떠나 다수 국민이 등을 돌리면서다.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가 "인간은 소유물의 상실을 아버지의 죽음보다 더 잊지 못한다"고 한 말 그대로다. 소득주도성장론을 고집하다 청년취업난만 가중시킨 오발탄도 마찬가지다. 국정 무능이야말로 여권 지지층이 이른바 '문빠'(강성 친문) 위주로 졸아든 근본 요인인 셈이다.
'문빠'로 불리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집권엔 도움이 됐을진 모르겠다. 그러니 "양념"(문 대통령)이니, 에너지원(이낙연 대표)이니 하며 힘을 실어줬을 법하다. 하지만 정권 내에서 바른 말을 하는 인사들에게조차 좌표를 찍어 문자폭탄 세례를 가하는 행태가 수성에 도움이 되겠나. 스포츠에서도 상대 팀에 물병을 던지는 등 격하게 특정 팀 편을 드는 훌리건이 결국 다수 관중을 떠나게 만든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잘못 설계한 경제·안보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온갖 후유증이 드러났는 데도 편가르기식 국정을 고집할 텐가. 예컨대 징벌적 과세 위주의 부동산정책으로 24번 헛스윙을 하고도 같은 타격 폼을 고수할 건가. 당정이 주택 공급을 늘리려 양도세 한시적 완화를 거론하다 "핵심 지지층이 이탈한다"며 백지화했으니 말이다.
임기가 1년 반도 채 안 남은 정권이 빗나간 국정 궤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혹여 어떤 정치공학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진 모르겠지만, 성공한 정부로 역사에 기록되긴 어려울 듯싶다. 문재인정부가 국정동력을 회복하려면 국민을 통합하겠다고 한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