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마다 꽁초 더미”···국내 유일 ‘양재동 모델’의 실상

      2021.01.25 12:29   수정 : 2021.01.25 12:29기사원문

“여기서 제일 가까운 흡연박스가 걸어서 10분이다. 거기까지 어떻게 가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 편의점 앞에서 흡연자에게 “여기 금연구역인 거 알고 계신가요?”라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그는 담뱃불을 끄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게 서초구가 양재동 전역을 금연구역으로 묶은 강수에 따라붙은 수식어다. 하지만 구민 건강을 보호하고, 깨끗한 거리를 만들겠다는 서초구 의도와 달리 흡연 옥죄기에 따른 풍선효과로 양재동 곳곳이 멍들고 있었다.




■하수구에 담배꽁초 ‘수두룩’..풀숲에 버려두기도

서초구는 지난해 11월 2일 양재동 모든 공공도로(사유지 제외)를 금연구역으로 선포했다. 두 달 계도기간을 거친 후 2021년 시작과 함께 흡연 규제를 본격 실시했다. 적발 시 과태료 5만원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흡연자에게 터준 숨통은 양재1·2동을 합쳐 불과 30곳이다. 이 탓에 사유지 흡연이 늘고 담배꽁초가 산발적으로 버려져 도시 미관은 더욱 훼손되고 있었다. 공공도로와 사유지의 가시적 구분이 모호한 탓에 꼼수 흡연이 만연했다.

25일 양재동 곳곳의 가로등, 전신주, 하수구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흡연 규제가 무색할 만큼 건물 앞 도로나 건물과 건물 사이 틈에서 흡연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십수개 꽁초가 골목길 풀숲에 버려져있기도 했다. ‘동 전체 금연’이라는 과도한 정책에 따른 우려가 확인된 셈이다.

흡연구역이 제대로 갖춰진 것도 아니었다. 흡연자 이모씨(29)는 “몇 개 없는 흡연구역에 가림막도 없다보니 눈·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온다”고 토로했다. 별도 표시 없이 꽁초 쓰레기통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가 하면, 눈을 쌓아두거나 차가 주차돼 이용이 불가한 곳도 있었다.

서초구 관계자는 “파라솔·흡연 부스를 설치하거나, 선을 그려놓으면 이동 혹은 철거 시 추가 비용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가보니 없더라”...철거 흡연구역 미공지한 서초구

무엇보다 흡연구역 찾기가 곤욕이었다. 서초구 홈페이지에 30곳의 흡연구역이 안내돼있지만, 이를 따라 가본 결과 18곳만 확인할 수 있었다. 대로변에 위치한 곳은 비교적 발견이 쉬웠으나, 주택가·골목길에 있는 흡연구역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도가 이미지 파일인데다 위치 표시가 지도상 건물 하나와 맞먹는 크기라 장소 특정이 불가능했다.

서초구에 따르면 실제 최근 9곳이 철거되거나 위치이동 됐다. 주택, 상가, 음식점 등에서 민원이 빗발친 데 따른 조치라는 게 서초구 설명이다. 당초 주변과의 협조가 미흡했던 것이다. 흡연구역 인근 한 카센터 대표는 “담배연기가 흘러들어오는 정도는 아니지만, 미관상 좋지는 않다”며 “서초구에서 협조해오거나 통보해온 바는 없다”고 말했다.

철거 사실을 즉시 공지하지 않았다는 비판 역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흡연구역을 겨우 찾아간 흡연자들이 허탕을 치게 되는 것이다.

의견 수렴 과정이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월 서초구는 치과의사·교수 등 전문가, 지역 대표, 흡연자 대표 등 6~7명만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양재동 인구는 6만6986명이다. 게다가 흡연자 대표는 서초구 거주 사실도 확인 안 된 온라인 흡연 커뮤니티 관계자였다.


서초구 관계자는 “담당 인력도 3~4명에 불과하고, 사유지 흡연까지 일일이 단속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추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금연구역 확대 혹은 해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 김태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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