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국민 통합' 물 건너가나
2021.01.25 18:00
수정 : 2021.01.25 20:22기사원문
문재인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딱 하나만 고르라면 통합이다. 문 대통령은 4년 전 취임사에서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에서 통합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1888~1985)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1932년)에서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찾았다. 2001년 9·11 테러로 잔뜩 열받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당신은 우리 편 아니면 반대 편"(You are either with us, or against us)이란 어록을 남겼다. 중간지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 말을 듣고 섬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 대통령은 그저 정치 지도자로서 보통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역사를 보면 통합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중용했다. 관포지교에 나오는 바로 그 관중이다. 관중은 환공이 왕좌를 놓고 형제의 난을 벌일 때 반대편에 섰다. 관중이 쏜 화살은 환공의 허리띠에 맞았다. 그 덕에 환공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런 관중을 재상으로 기용했으니, 환공의 포용력은 가히 무한대다. 길을 놓은 건 친구 포숙이다. 포숙은 환공에게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관중을 중히 쓰시라"고 간언했다. 환공은 이 말을 따랐고, 그 덕에 춘추시대 첫 패자, 곧 우두머리 자리에 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통합에 목마르다. 그는 지난주 취임사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소환했다. 링컨은 1863년 1월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면서 "내 모든 정신이 이 안에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미국을 하나로 묶는 통합에 내 모든 정신이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47% 가까운 득표율을 올렸다. 미국인 절반이 여전히 트럼프 편이다. 바이든이 과연 극렬 트럼피스트들을 껴안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해방 이후 한국 정치에서 통합의 모범을 꼽자면 김대중 대통령이다. 당선인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건의한 게 대표적이다. 외환위기와 싸울 경제수장을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연합 출신 중에서 중용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규성 재무장관, 이헌재 금융감독원장이 바로 그들이다. DJ의 말을 들어보자. "국민의정부 초기에 벌어진 경제전쟁의 장수들은 거의가 자민련이 추천한 인사들이었다…나는 일 잘하는 장관을 제일 아꼈다. 그들의 국정 경험을 신뢰했고…그들은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데 적임이었다"('김대중 자서전 2권').
코로나 위기 속에 문 대통령 임기는 약 16개월 남았다. 연말연시 부분개각을 통해 장관 얼굴이 싹 바뀌었다. 그런데 다 '내 편'이다. 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서 뽑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측근 이광재 의원은 노 대통령이 "야당이 우리의 적은 아니지 않은가? 권력을 나눠주고라도 나는 그들과 협의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회고한다('노무현이 옳았다'·2020). 대연정은 여야의 격한 반대 속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그릇의 크기가 달랐다. 문 대통령의 그릇은 얼마나 큰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