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 우리나라 고유어다?
2021.02.06 09:00
수정 : 2021.02.06 09:00기사원문
국립국어원은 '닭도리탕'이라는 단어에 일본어 '도리'가 포함된 것으로 판단해 '닭볶음탕'으로 순화했다. 하지만 '닭도리탕'의 어원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닭볶음탕’, 탄생과 논란
국립국어원은 1992년 11월, '닭도리탕'을 일제의 잔재로 판단하고 순화어로 '닭볶음탕'을 실었다.
하지만 누리꾼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닭도리탕’이 고유어일 수 있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지난해 7월, 방송인과 요식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백종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콘텐츠에서 요리법을 소개하면서 '닭도리탕'이 고유어라고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닭도리탕의 어원에 대해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해당 순화어 결정이 잘못됐다는 주장은 2012년 이외수 작가의 언급과 2016년 권대영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언급 등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2016년 당시 한국식품건강소통학회장이던 권 교수는 "'도리탕'은 1920년대 문헌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전부터 즐겨 먹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러면서 닭도리탕의 '도리'는 칼이나 막대기로 거칠게 쳐낸다는 뜻의 '도리치다'나 '도려치다'의 어원이라고 설명했다.
역사 속 ‘이’ 음식
역사 문헌에 따르면 비슷한 닭요리를 일컫는 단어로 '도리탕' 혹은 '닭볶음'이 있다. 하지만 ‘도리’에 대한 어원은 찾을 수 없다. 또, 시대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지면서 혼란이 더해졌다.
조선 시대 17세기 말경 발간된 <산림경제>에서는 '초계'라는 음식명이 나오는데 이를 직역하면 '볶은 닭'이다. 참기름에 볶은 뒤 물을 넣어 끓이는 방식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에서는 "송도에서는 닭볶음을 '도리탕'이라고 부른다"라고 기술했다. <해동죽지>(1925)에서는 "‘도리탕桃李湯’은 계확鷄臛으로 평양이 유명하다"고 기술했다. '확'은 탕과 달리 국물이 적은 음식이다.
1920년대까지는 고추장 양념이 아닌 간장과 후추 등의 양념을 사용했지만 1946년 편찬된 <조선 음식 만드는 법>에서는 붉은 고추를 넣어 조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양계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오늘날의 조리 형태가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닭도리탕’, 인정될 가능성은 적어
2019년과 2020년에도 누리꾼들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이와 관련해 39건을 질문했다. 어원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닭볶음탕’이라는 용어로 순화한 근거가 빈약하고 실제 요리와 차이가 있다는 비판 의견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누리꾼들의 주장처럼 '도리'가 고유어 '도리치다'에서 유래됐다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음식의 조리과정이 합성어로 구성될 때 어간만 독립적으로 붙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음식에 대한 합성어의 예시로 ‘볶음밥’(볶다+밥), ‘계란말이’(계란+말다), ‘두부조림’(두부+조리다) 등이 있다.
'근거가 없다면 양 단어를 모두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관계자는 기존의 결정을 뒤집을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된 '도리탕'에 들어가는 재료를 강조하면서 '닭도리탕'의 형태가 된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면서 '닭도리탕'의 고유어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도리치다’라는 표현이 적힌 역사적 근거가 없다면 순화어 결정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moo@fnnews.com 최중무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