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이석영 선생 순국87주기 16일추모

      2021.02.10 05:21   수정 : 2021.02.10 05:2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남양주=강근주 기자】 영석 이석영선생추모식 추진위원회와 남양주시가 오는 16일 오후 2시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남양주시 화도읍 소재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에서 이석영 선생 순국 87주기 추모식을 거행한다.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족과 남양주시 관계자를 중심으로 간소하게 진행하고 남양주시 공식 유튜브 ‘이석영뉴미디어도서관’을 통해 중계하고 유튜브 ‘우당TV’에도 탑재한다.

이종찬 추진위원장과 문희상 전 국회의장, 조광한 남양주시장, 황후연 경기북부보훈지청장, 이철영 남양주시의회 의장 등 30여명이 추모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영석 이석영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백사 이항복의 11세손이며, 우당 이회영-성재 이시영의 둘째 형이다. 이석영 가문은 6명의 영의정과 영의정 추증 3명 등 정승 9명을 배출한 가문으로 삼한갑족이라고 불렸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대감 양자로 입양돼 1885년 증광시(增廣試) 문과로 급제 후 1904년 종2품인 장예원(掌禮院) 소경(少卿)을 마지막으로 경술국치로 사직했다.

1910년 12월 우당 이회영, 성재 이석영 등 6형제와 같이 전 가족 40여명이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은 해방될 때까지 청산리 대첩 등 독립전쟁 주역으로 활동하며 광복군 주축을 이뤘다. 광복군 지청천 사령관, 1지대장 김원봉, 2지대장 이범석, 3지대장 김학규 등 광복군 지휘관이 모두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이석영은 일제가 ‘불령선인’으로 지명 수배해 피신하면서 심양, 북경, 천진, 상해 등을 유랑하면서 빈곤하게 생활하다 1934년 2월16일 상해에서 타계해 홍교로(虹橋路)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이석영 선생은 당대 갑부였던 양부 이유원 대감의 재산을 상속받아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이유원 재산은 “경기도 양주에서 한양까지 80리 언저리 전답이 모두 이유원 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종찬 추진위원장은 9일 “이석영 선생이 서거할 당시 임시정부가 항주로 피신 중이라 장례를 모실 분이 없어 임시로 장례를 치렀지만 왜군 공격으로 전란이 격화돼 묘지를 보살피지 못한 채 잊혀졌다”며 직계 후손이 없어 “87년 만에 추모식이 아닌 장례식을 거행하게 됐다”고 추모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경기도에는 조선시대 금수저 사대부가 모두 살았지만 국가가 기울어질 때 나서는 이는 드물었다”며 “전 재산과 목숨을 항일운동에 바친 이석영 선생 6형제는 경기도 자랑이며, 남양주 자랑”이라고 추모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남양주 역사의 숨결 속에 여전히 살아계신 이석영 이름 석 자를 우리 시 곳곳에 새겨놓고 후대에도 영원히 기억하도록 온 마음과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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