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의 외로운 도전

      2021.02.15 14:25   수정 : 2021.02.15 15:03기사원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한 때 마이너리그 야구선수였다. 1년 동안 활약했으니 짧은 기간은 아니었다. 조던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선수였다.



1994년 초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더블 A팀과 계약한 조던은 홈런 3개를 때려냈고 타율도 2할(0.202)을 넘겼다. 하지만 결국 이듬해 NBA(미 프로농구)로 돌아갔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버스 이동이었다고 한다.

비행기 타고 갈 거리를 버스로 가야하니 곤욕이었다. NBA 선수로는 큰 신장(198㎝)이 아니었지만 좁은 버스 의자 간격은 무던히 그를 괴롭혔다. 결국 자신의 돈으로 안락한 최고급 리무진 버스를 사서 구단에 선물했다. 이후로는 조금 나아졌다.

이처럼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의 간격은 햄버거와 최고급 스테이크처럼 크다.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이 굳이 편한 길을 버려두고 어려운 마이너리그의 길을 선택했다.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기회를 잡지 못하면 ‘버스 이동’을 감수해야 한다.

그의 계약 조건이 '스플릿'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조건부 마이너리그 계약이다.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경우 130만달러(14억4000만원)라는 연봉이 보장되지만 마이너리그에 남으면 햄버거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적은 연봉 탓도 있지만 버스에서 장시간 이동하다 보면 햄버거밖에는 챙겨 먹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현종은 KIA의 에이스 노릇을 포기하고 ‘길 위의 인생’을 선택했다. 마이너리그는 버스를 타고 떠도는 ‘길 위의 인생’이다.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면 그만 아닌가? 그렇긴 한데 쉽지가 않다. 텍사스의 스프링캠프 초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투수는 16명이다. 그들 가운데 최종 26명(야수 포함) 엔트리에 들 투수는 잘 해야 2~3명 남짓일 것이다.

메이저리그 보장 조건의 투수는 스프링캠프나 시범경기에 부진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초청선수들은 죽기 살기식의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새로 보강된 아리하라 고헤이, 마이크 폴티네비치 등 선발진은 이미 꽉 차 있다.

데인 더닝, 카일 코디 등 선발진 합류를 노리는 후보들도 쟁쟁하다. 20대 영건 코디는 지난 시즌 5경기서 선발 테스트를 거쳤다. 마지막 두 경기서 5이닝씩을 던져 각각 1실점했다. 1승1패 평균자책점 1.59. 만만치 않은 상대다.

켄터키 대학시절엔 미국 국가대표를 지냈고 2017년 마이너리그 투수상을 수상했다. 팔꿈치 수술로 2019년을 통째로 날렸지만 지난해 재기에 성공했다. 우투수이면서 낮은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0.133)이 돋보인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부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개막 엔트리 확보가 쉽지 않다. 양현종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전에 나선 용기는 높이 사줄 만하다. 두 가지 점이 눈길을 끈다. 첫째는 그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고, 둘째는 질 때 지더라도 도전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이대호와 황재균, 구대성 등도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그런 후 스프링캠프서 당당히 살아남았다.
다행히 현지 언론은 양현종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양현종이 텍사스를 택한 이유도 경쟁에서 생존할 가능성을 높게 보았기 때문이다.
꽃길 마다하고 오프로드로 나간 양현종을 응원한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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