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은 누구? 김구와도 인연

      2021.02.16 14:56   수정 : 2021.02.16 14:5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15일 타계한 백기완(향년 89세)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장례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고(故) 백기환 소장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조부 백태주는 3.1 운동 당시 수천 장의 태극기를 제작해 배포하는 활동도 한, 신망 높은 지역 유지였다.



백 소장은 백범 김구 선생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김구는 1898년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감리서에 수감됐다고 탈옥을 하고 백태주 선생의 집으로 피신한 적이 있다.

해방 후 백 소장이 부친을 따라 서울을 갔을 때 백범을 만나 그를 따르게 됐다. 김구 선생도 백 소장을 좋아해서 그가 즐겨 읊던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휘호로 써서 주기도 하고, 중학교까지 학비를 대주리라 약속하기도 했다고 한다.

백 소장은 이후 재야 운동가로 1964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함석헌·계훈제·변영태 등 재야 운동가들과 함께 참가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재야 정치인인 장준하와는 백범사상연구소 설립과 민족학교 운동도 전개했다. 그후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등 민주화 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해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열린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재야운동권에 독자후보로 추대돼 선거에 입후보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와 군부독재 종식을 촉구하면서 중도 사퇴했다.

5년 뒤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야운동권의 독자 후보로 추대돼 출마했지만 5위로 낙선했다.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2000년대 들어서도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들의 전국 투쟁현장을 비롯해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용산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이명박 정권퇴진운동, 민중총궐기 등에 참여했고 다치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집회에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한편 순우리말을 살려서 다양한 단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는 현 시점에서도 모두에게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기도 하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1980년에 그가 지은 장편시 '묏비나리'의 일부분을 차용해 만들어졌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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