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기완 '거리두기 영결식' 엄수…"산 자가 따르겠다"(종합)
2021.02.19 15:48
수정 : 2021.02.19 15:48기사원문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서울광장에서 19일 엄수됐다. 수백여명의 시민은 민주화·통일 운동에 평생을 바친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이날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시작한 영결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 추모영상, 조사낭독, 조가(弔歌) 등으로 오후 1시10분여까지 계속됐다.
영결식에는 오전 11시께부터 추모객 1000여명이 운집해 백 소장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장례위원회 측은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구역을 나눠 99개의 의자를 설치했다.
선 안에 설치된 의자에는 주로 백 소장 유가족 및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이 앉았고, 시민 수백여명은 선 밖에 서서 영결식에 참여했다.
백 소장 동생 백인순씨는 유족 인사를 통해 "날씨도 고르지 못하고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도 많이 모여주셔서 감사하다"며 "오라버니가 언젠가는 휠체어를 타시더라도 이곳에 오셔서 여러분을 만나는 정겨운 모습이 곧 올 줄 알았다"고 전했다.
오랜 동지인 문정현 신부도 "앞서서 나아가셨으니 산 저희들이 따르겠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뵐 그 날까지 선생님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민중가수들의 민중의 노래 합창, 시민 헌화 등으로 영결식은 종료됐다. 장지는 경기 마석 모란공원이다.
백 소장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 별세했다.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세로 입원해 투병을 이어왔다.
1932년 황해도 출생으로, 1964년 한일협정에 참가하고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서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 등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 왔다.
1974년에는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해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으며, 1979년과 1986년에도 'YWCA 위장결혼 사건' 과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대회' 등을 주도해 투옥된 바 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재야운동권에 독자후보로 추대돼 선거에 입후보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중도 사퇴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재야운동권의 독자 후보로 추대돼 출마했지만 5위로 낙선했다.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2000년대에도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비롯한 다양한 현안에 꾸준히 참석해 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가사의 원작으로 알려진 시 '묏비나리'를 짓기도 했다.
한편 백 소장의 장례 행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10인 이상 집회 금지 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 대해서는 기존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외 행사라도 99명 이상이 모이면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에 장례위원회는 99명씩 조를 짜 나눈 뒤 노제와 영결식 등을 진행했다. 영결식에 앞서 진행된 노제에는 3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