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

      2021.03.07 18:00   수정 : 2021.03.07 18:00기사원문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공명)은 천문에 능했다. 천문(天文)은 우주, 곧 하늘의 일이다. 그와 대비되는 말이 인문(人文), 곧 사람의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물리칠 때 동남풍을 부른 것도 제갈량이다. 바람을 등에 업은 손권·유비 연합군은 불을 앞세워 당시 최강국 위나라를 무찌른다.
제갈량은 특급 인재인 방통이 죽은 것도 별자리를 보고 먼저 알았다. 공명이 대성통곡을 하자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겼으나 얼마 뒤 방통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 신통함에 혀를 내둘렀다.

점성술은 수천년 전 서양에서도 기세를 떨쳤다. 임금들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점쟁이를 불러 별점부터 쳤다.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뒤 점성술은 다소 위세를 잃었으나 별자리를 보고 운세를 점치는 민간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도 별점이 유행인 모양이다. 포털 네이버에서 '운세'를 검색해 보라. 띠별 운세와 함께 물병자리부터 염소자리까지 별자리 운세가 같이 뜬다.

1927년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인류의 별의 순간'(Sternstunden der Menschheit)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인류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 14건을 추렸다. 1번이 워털루전투(1815년)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다. 로알 아문센의 남극 탐험(1911년)이 5번,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의 태평양 발견(1513년)이 6번에 올랐다. 블라드미르 레닌이 망명지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조국 러시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순간(1917년)은 12번째 별의 순간으로 평가받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별의 순간은 한 번밖에 안 온다"고 말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거예요, 아마"라고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윤석열이 총장 옷을 벗고 자연인이 됐다.
김 위원장이 말한 '별의 순간'을 낚아챈 걸까.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행보를 보면 알 수 있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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