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정치를 바꿔라

      2021.03.09 08:49   수정 : 2021.03.09 10:1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여기 책 네 권이 있다. 지은이는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바로 청년 일자리다.

어떻게 하면 청년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늘릴 수 있기는 한 건가? 괜한 희망고문은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현 386세대가 자연사한 뒤에나 일자리 문이 삐쭉 열릴 것 같다.
386은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30대를 보낸 세대다. 현재 50~60대에 접어든 386세대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최상층을 점령했다. 이들은 아주 오래 사는, 단군 이래 최장 장수세대가 될 공산이 크다.

청년이 나라의 미래라고 한다. 말만 근사하다. 현실은 거꾸로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청년들은 386 벽에 가로막혀 일자리 시장에서 고초를 겪을 공산이 크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부는 당최 뭘 하고 있나? 국회는? 오히려 정치가 청년 일자리를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씩 짚어보자.



청년 일자리를 말하는 네 권의 책


<리셋 대한민국>

'리셋…'(2021)은 우석훈 교수와 진보 박용진 의원, 보수 김세연 전 의원 등 셋이 나눈 대담집이다. 공통분모는 세대교체다. 김 전 의원은 "830세대로 급격한 세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830은 80년대에 태어나 현재 30대에 이른 00학번 세대를 말한다. 830세대가 우리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다면 그야말로 급격한 변화다.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노조가 기존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가는, 살을 내주자는 이야기는 입 다물어 버리고, 노조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노동운동을 하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노조를 깐다. 차기 대선 후보 물망에도 오르는 박 의원은 97세대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90년대 학번에 70년대생을 말한다.

우석훈 교수(성결대)는 "박정희 세대인 60대 보수, 87년 세대인 50대 진보, 이 두 세력은 정치와 이념에서 갈리지만, 청년 입장에서 보면 그냥 꼰대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꼬집는다. 대한민국을 리셋하려면 이 꼰대집단을 넘어서야 한다.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2019)에서 "노동시장 구조가 신분계급화의 초입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의 맨 꼭대기에 3대 요소, 곧 대기업·정규직·노조를 다 갖춘 386세대가 있다. 맨 밑바닥에 청년들이 우글거리는 중소기업ㆍ비정규직ㆍ비노조가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 교수는 "자본과 386세대 노조 리더들 간의 '의도하지 않은 공모'"를 원인으로 꼽는다. 자본은 곧 기업이다. 그는 착취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쓴다. "정규직 노동과 자본이 중하층 하청 및 비정규직을 함께 착취하는" 구조가 정착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연공급제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오늘의 청년세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누린 연공제가 청년세대 일자리 난의 주요 요인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연공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른다. 호봉제와 같다. 임금 총액이 오르면 기업은 크게 세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저임금에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신규 채용을 줄인다. 이도저도 귀찮으면 아예 해외로 공장을 옮긴다. 죄다 청년이 피해자다.



<우석훈 '88만원 세대'>

이철승의 책을 읽은 뒤 책장 속에 박혀 있던 우 교수의 '88만원 세대'를 다시 꺼내 먼지를 털었다. 서문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F(학점) 두개짜리 쌍권총은 물론이고 연발총에 기관총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학점을 받고 겨우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취직은 '골라가며' 했다. 그렇게 취직한 사람들이 지금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과장 또는 부장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는 2007년에 나왔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다. 88만원은 당시 청년 비정규직의 대략적인 임금 수준이다. 14년 전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폐해를 일찌감치 파헤친 우 교수의 혜안이 놀랍다.



<윤희숙 '정책의 배신'>

국회에서 부동산 '5분 연설'로 이름을 떨친 윤희숙 의원(국민의힘)은 알아주는 경제학자다. '정책의 배신'은 작년 4·15 총선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약간은 정략적이다. 하지만 분석은 논리적이다. 윤 의원은 현 노동시장을 "예전에 자리잡은 사람과 바깥에 줄을 서 있는 사람 간에 어떤 경쟁도 허용되지 않는 구조"라고 말한다. "노동귀족이 공공부문과 대기업이라는 좁고 쾌적한 영토를 본인들만의 것으로 만들고 진입로를 폐쇄해버렸다"는 것이다.

연공제 비판은 여기서도 나온다. 윤 의원은 "청년들에게 연공급 중심의 임금 체계는 강력한 장애물"이라며 "정부가 노조를 비호하는 것은 청년실업을 진정으로 걱정하는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라고 주장한다.

청년실업 얼마나 나쁜가


올 1월 기준 청년(15~29세) 취업자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만명 넘게 줄었다. 1년새 청년 인구 감소(13만명)를 고려해도 18만명 넘게 줄었다. 청년고용율은 41.1%로 전년동월비 2.9%포인트 하락했다. 반대로 청년실업률은 1년 전 7.7%에서 9.5%로 수직상승했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체감실업률은 27.2%로 5.8%포인트 높아졌다. 청년 10명 가운데 3명가량이 사실상 실업자란 뜻이다.

국제 비교를 하면 한국은 청년실업률이 낮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10.5%로, 일본-독일-이스라엘 등에 이어 8번째로 낮다. 해마다 이 정도 순위다. 지난해 OECD 평균은 15%다. 단 OECD 청년실업률 통계는 15~24세를 기준으로 한다.

다른 나라보다 낫지만 OECD 통계로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우리 조세부담률이 낮다고 세금을 함부로 올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 연령대에서 청년층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네이버에서 '청년'을 검색하면 연관어로 구직활동지원금, 전세자금 대출, 주거급여 등이 줄줄이 뜬다. 청년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는 뭘 하고 있나


고용노동부는 지난 3일 청년고용 추가 대책을 내놨다. 이미 정부는 작년 말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통해 4조4000억원을 투입해 80만명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1조5000억원, 25만명을 추가했다. 합치면 5조9000억원에 104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대책을 뜯어보면 과연 정부가 청년 고용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예산 지원은 근본 처방과 거리가 먼 미봉책이다. 지난 십수년 간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려는 정책은 다 실패로 돌아갔다. 성공했다면 지금 청년 일자리가 남아돌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세금 일자리에 집착한다. 무능하거나 비겁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정부가 무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사실은 답을 안다. 하지만 용기가 없다. 청년이 바라는 일자리를 만들려면 노조와 한판 붙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가 촛불시위를 주도한 강성 노조의 도움으로 출범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그러니 어떤 장관이 감히 노조와 싸우려 덤비겠는가.

출범 첫 해인 2017년 9월 노동부는 이른바 양대지침을 폐지했다. 문 정부가 노조에 준 첫 선물이다. 양대지침은 고용주가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고,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이로써 박근혜정부가 힘들게 도입한 노동개혁은 1년 8개월만에 물거품이 됐다. 요컨대 문 정부와 노조는 한통속이다.


문제는 연공제야, 바보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00인 이상 사업체에서 호봉급을 운영하는 비율은 58.7%에 이른다. 2016년 63.7%에서 점차 낮아지는 추세이긴 하나 여전히 높다. 기준을 300인 이상으로 높이면 60.9%로 높아진다. 대기업일수록, 곧 좋은 일자리일수록 연공급제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근속연수 대비 임금 차이도 한국이 OECD 국가 중 제일 크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국제 비교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1년 미만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이 약 3.3배로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의 2배에 가깝다.

고용부가 스스로 파악한 연공급제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직무·능력 중시의 공정한 임금체계 확산 지원' 보도자료 참조·20년 1월13일)

-고도성장기엔 기업이 호봉 자동 승급에 따른 임금 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있었다
-그러나 3% 미만의 저성장 기조 아래서 연공급제는 청년 채용 여력 감소를 유도할 우려가 있다
-연공급제는 정규직ㆍ비정규직간 임금 격차를 확대시킨다
-연공급제는 대ㆍ중기 임금격차를 확대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연공급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어긋나고 임금의 공정성 문제를 초래한다



임금개혁 시늉만 하는 정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문제점을 뻔히 알지만 대책은 겉핥기다. 실제 문 정부가 걸어온 길을 보자.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공공기관 보수체계를 직무급 중심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런데 세가지 조건이 붙었다.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서, 노사합의 자율로, 단계ㆍ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직무급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현재 아주 일부 공공기관에서 직무급제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그마저도 노조 벽을 넘어서야 한다.

작년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는 공공기관 직무급 관련 합의문을 발표했다. "직무 중심 임금체계 개편은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하여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2년 전 정부 발표와 다를 게 없다. 임금개혁은 제자리 걸음이다.

민간기업은 정부가 직무평가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쳤다. 다시 말해 기업은 알아서 하라는 거다. 다시 말해 민간기업 임금개혁은 포기한 거다.



해법은 뭔가


일자리는 시혜가 아닌 권리다. 감나무 아래서 입 벌려봤자 헛수고다. 기다릴 게 아니라 쟁취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가 연공급제를 순순히 받아들일 확률은 제로다. 기업이 노조와 싸워가며 호봉제를 폐기할 확률도 제로다. 정부가 청년을 위해 으쌰으쌰 노동개혁에 나설 확률 역시 제로다. 국회? 꿈도 꾸지 마라. 민주당을 이끄는 386세력은 노조와 한 배를 탔다. 정당에 청년 몫이 있지만 구색을 맞추는 수준이다. 그나마 정의당에 젊은 의원들이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철승 교수는 노골적으로 청년을 향해 행동에 나서라고 부추긴다. "시민사회와 젊은 유권자 집단은 386세대를 통한 '대리정치'를 끝내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정치권이, 정당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시민사회는 표로 응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석훈 교수는 더 '선동적'이다. '88만원 세대' 책 표지엔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이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요즘 청년들은 짱돌을 들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스펙을 쌓거나 물류센터에서 밤새워 상하차 뛰거나 오토바이로 짐을 날라야 한다.

현실적인 방안은 표다. 마침 내년 봄에 대선 큰 장이 선다. 청년 유권자들로선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청년에게 시혜를 베풀 듯 용돈을 주는 후보가 아니라 연공급제를 타파하겠다는 후보를 찍어야 한다. 우석훈 교수는 '리셋 대한민국'에서 "여의도에 있는 저 국회의원들이 우스운 사람들인 것 같아 보이지만…돈 안 받아도 움직이는 게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정치인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은 표다.
정치인은 표 냄새를 귀신 같이 맡는다. 이번에야말로 청년들이 단합된 힘을 보여줄 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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