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면 지워지는 생기부 학폭 이력 "처벌이 먼저" "낙인 안된다" 갑론을박

      2021.03.10 17:49   수정 : 2021.03.10 17:49기사원문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학폭) 이력이 가해자의 반성 여부에 따라 삭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학폭 가해자라고 해도 어린 학생인 점을 감안해 '낙인'을 찍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근절을 위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도 모르게 지워지는 이력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조치 사항은 삭제할 수 있다.



학교폭력을 저질러 △제1호(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제2호(피해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제3호(학교에서의 봉사) △제7호(학급교체) 조치를 받은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학교폭력 기록이 삭제된다.

상대적으로 처분 정도가 무거운 △제4호(사회봉사) △제5호(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제6호(출석정지) △제8호(전학) 조치를 받은 학생의 경우, 전담기구 심의를 거쳐 기록 삭제 여부를 따진다.


전담기구는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와 행동 변화를 고려해 삭제 여부를 판단하고, 삭제가 결정될 시 졸업과 동시에 기록이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개입하지 않는다.

심의에서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졸업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생기부 기록은 삭제된다. 당초 학폭의 생기부 기재 기간은 5년이었으나, 2013년부터 2년으로 바뀌었다. 어린 학생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재학 기간 동안 2건 이상 학폭 사안으로 조치를 받거나, 제9호(퇴학처분)을 받은 고등학생 등은 학폭 기록을 삭제할 수 없다. 중학교는 퇴학처분이 없기 때문에 생기부 학폭 이력을 무조건 지울 수 있는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거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생기부 기재 요령을 수정했다"며 "한 두번의 일시적 분쟁 등으로 사회적 낙인이 되고 학생들이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부는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 학생 보호에 더 무게를 두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엄중 처벌" vs "반성 기회를"

'생기부 기록 삭제'를 두고 일각에선 학폭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학폭의 수위가 날이 갈수록 잔혹해지고,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만큼 기록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생활기록부 이력 삭제 권한을 피해자에게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반성의 정도에 따라 졸업 시 삭제가 가능하다는 항목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며 "피해자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학폭에 대한 이력은 피해자와 피해자 부모의 동의 시에만 수정, 삭제가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명인들의 학폭 논란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12세 자녀를 둔 윤모씨(42)는 "미성년자 때 저지른 일이라 해도 엄중히 처벌해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며 "생기부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학폭 피해 경험이 있는 김모씨(31)는 "성장기에 당한 피해는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며 "피해자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쉽게 삭제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반면, 어린 학생에게 낙인을 찍기보다는 보호·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4년 차 A교사는 "아직 어린 학생인 만큼 반성의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고 밝혔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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