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공장, 2교대 야간근무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죠"(인터뷰)
2021.03.13 00:01
수정 : 2021.03.13 00:0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3일 국내 클래식 음반 사상 최초로 1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운 소프라노 조수미의 ‘Only Love’가 무려 20여년 만에 LP로 발매됐다. 10일에는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동아기획 편에 출연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장필순의 ‘reminds 조동진’이 출시됐다. 마니아층을 거느린 패닉의 1집 ‘Panic’은 오는 24일 LP로 최초 출시될 예정이다.
세 장의 LP는 모두 LP전문 브랜드 마장뮤직앤픽처스가 3월에 선보인(일) 음반이다. 2014년 아이유가 ‘꽃갈피’ LP를 발매할 때만 국내에서 LP제작이 여의치 않아 저 멀리 독일로 가야했다. 3년 뒤 2017년 6월, LP 생산공장 ‘마장뮤직앤픽처스의 LP공장’이 문을 열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전신인 벨포닉스 레이블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백희성 엔지니어가 1968년에 설립된 유니버설레코드의 장비를 넘겨받아 LP제작기술을 사사 받고 연구하면서 2004년 생산라인이 중단된 서라벌 레코드 이후, 13년 만에 다시 LP공장이 본격 가동된 것. 100% 국내 제작 바이닐(LP) 시대가 개막했다.
백희성 엔지니어와 함께 마장뮤직앤픽처스를 이끌고 있는 주역은 하종욱 대표. 아날로그 음악과 LP 애호가인 그는 “처음엔 이 오래된 사업의 부활, 복원을 만류하는 방해꾼이었다가 (이후에) 전문경영인"으로 합류했다. 다음은 하대표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 2020년 연말 음반 판매 사이트 예스2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우리나라 LP시장이 크게 성장했는데요. 업계에선 언제부터 LP시장의 성장세를 체감했나요?
처음 (마장뮤직앤픽처스의 LP공장) 론칭을 하고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할 무렵엔 수많은 실패와 성공, 연구와 시도, 극복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많은 창작자들과 기획사에 우리들의 존재와 성과물을 직접 알려 나갔고, 서서히 응원과 지지, 격려의 우군들이 생겨났지요. 우리의 기획이 쌓이고, 주문도 넓혀지면서 서서히 LP 시장도 넓혀졌는데요. 더딘 성장의 분위기가 거대한 현상으로 바뀐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입니다.
■ 2020년은 특히 가요 LP의 성장세가 두드러진 한해였는데요. 얼마나 급격한 변화가 생겼나요?
500장씩 주문하던 수량이 1,000장, 2,000장으로 확대되고, 가요와 클래식 명반의 리이슈로 제한된 시장에 본격적으로 LP 신보를 발매하는 것으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었죠. 그리고 올해부터는 미처 숨고를 틈도 없이 하나의 타이틀이 수천장, 만여장으로 확대되고 주문량은 전년 대비 2-3배 이상에 달하게 됐습니다. 지난 6월부터는 2교대, 야간근무라는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돼 그야말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 2020년은 LP부활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회사가 국내에서 유통, 소비되는 LP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고 가정한다면, 업계에서 말하는 최근 1-2년 사이의 성장 폭은 좁게는 3배 이상, 턴테이블 보급과 중고 LP의 판매, LP 관련 상품 등을 통합한 전체 시장의 성장은 약 5배 이상으로 본다는 게 업계, 그리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LP 부활 원년의 분위기’입니다.
■ 국내에서 LP시장이 다시금 주목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LP의 부활이 전 세계 음반 시장의 이슈로 부각된 지 벌써 7-8년이 경과됐는데요. 현상 이상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LP 부활의 징조는 다소 뒤늦은 물결이라고 할 수 있겠죠.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이 같은 디지털 매체인 CD의 퇴보를 낳았고, 이 간극 사이에서 소유와 경험, 접촉이라는 물리적 과정을 통한 음악 듣기의 자리에 LP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LP가 지니고 있는 풍부하고 따스한 음향적 특성이 치명적 매력으로 소환되어 이에 대한 음악적, 음향적인 면이 재부각됐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다른 차이가 공존하는 시간으로 재구성된 것이 최근의 음악시장이 향하고 있는 주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 LP를 접해본 기성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가 LP의 주요 소비자로 부상했는데요.
LP의 주소비층이 미국과 유럽, 일본처럼 LP를 처음 접하는 새로운 세대, 즉 스마트 세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LP를 경험하지 못한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 그들은 디지털의 편리함 속에서 LP를 소환하고 그 속에서의 가치를 소생시킨 주체였습니다. 불편한 조작을 해야 하고, 신기한 잡음이 깔려 있고, 이렇게 유난스러운 조건과 예의를 갖추어야만 소리를 내어주는 까칠한 재생 수단은 미래의 음악 소비자에게 가장 ‘쿨’하고 ‘핫’하고, ‘힙’한 것이 됐습니다. 더불어 기성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 전환의 관점에서 LP가 새로운 감상 수단으로 자리매김됐다고 느껴집니다.
■ 지금껏 회사에서 출시한 LP 앨범수는 얼마나 되나요?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LP는 두 가지 형태의 제작물이 있습니다. 직접 기획하고 계약하여 생산, 공급하는 기획 앨범이 있고, 단순하게 LP 제작물을 납품, 공급하는 임가공 생산품이 있습니다. 여태까지 임가공 타이틀 102건, 기획 45 건으로 총 147건 제작됐습니다.
■ 올해 주요 LP라인업을 꼽는다면?
먼저 이적과 래퍼 김진표가 함께한 2인조 그룹인 패닉의 실험적인 음악이 담긴 1집 'Panic', 2집 '밑'이 곧 발매될 예정입니다. 얼마 전 조수미 선생님의 ‘Only Love’가 발매됐고 러브홀릭의 ‘Re:All F.L.O.R.I.S.T’가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밖에도 이번 ‘제18회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음반 부문에서 수상한 조동익 ‘푸른 배게’도 발매됐습니다.
■ 지난 몇 년간 국내 LP 제작에 있어 트렌드의 변화를 느끼게 한 음반은 무엇인가요?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음반을 꼽는다면?
기획물 중에서는 빛과 소금 1집이 젊은 세대에게서 새로운 붐을 일으켰던 시티 팝의 유행과 함께 맞물려 초반 500장이 제작됐는데, 2쇄, 3쇄, 4쇄, 5쇄로 꾸준히 이어지는 스테디셀러가 돼 약 3000장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임가공 생산물 중에서는 백예린 정규 1집이 2 LP 형태로 초도 2,000장이 단 하루 만에 절판이 됐습니다. 이후 예약 주문에 의한 추가 생산품이 1만3,000장이 기록되어 총 1만5,000장이 판매됐습니다.
■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물을 꼽는다면요? 첫 기획 앨범은 고 조동진의 '나무가 되어'였는데요.
모든 작업이 소중하나, 굳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 첫 번째 기획 앨범 고 조동진님의 음반입니다. 몇년간의 준비를 통해 공식적인 론칭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때마침 조동진 6집 ‘나무가 되어’를 차 안에서 듣게 됐습니다. 그때가 2016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대표는 당시 즉시 차를 세우고 ‘나무가 되어’ 제작자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조동진 선생께 전달해 달라며 일종의 연애편지를 썼다. “우리가 첫 LP를 공식 론칭하는 데 (당신의) 앨범을 상징적 출발점으로 발매를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 다음날 응답이 왔다.
“조동진님이 직접 리마스터링한 데이터를 보내주셨죠. 이후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프레싱 머신으로 정성스레 찍어 테스트반을 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중량반으로 나오냐고, 잘 만들었다고, 소리가 좋다고, 우리들의 의지와 열의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마장뮤직앤픽처스는 당시 조동진의 6집뿐 아니라 기발표됐던 조동진 전집(1-5집)의 LP 판권도 확보했다. 또 그 자리에 함께했던 조동익의 ‘어떤날’ 1, 2집도 함께 계약했다.
“그해 가을 세상을 떠나시면서, 안타깝게도 조동진님의 마지막 음악적 유산을 마장뮤직앤픽처스의 첫 작업으로 남기게 됐는데요. 며칠 전, 조동진님을 추억하는 장필순님의 ‘Reminds 조동진’ 앨범을 다시 들으면서, 다시 한번 감사와 인연의 순환을 새기며 마음이 먹먹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음악을 새깁니다'라는 문구입니다. 우리들의 정성과 노력, 한방울 한방울의 땀이 깃든 과정 모두가 소중하고 애착이 갑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