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사 '부정후기' 무혐의 잇따라··· "공익성 크다" [김기자의 토요일]
2021.03.13 13:16
수정 : 2021.03.13 13:15기사원문
개중에선 일부 사실이 아닌 내용이 포함되거나 지속적인 부정후기를 게시한 사례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경우가 여럿 파악됐다.
불필요한 고소·고발로 공익목적이거나 정상적인 후기 작성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사 유튜버 고발영상 공유, '무혐의'
12일 일선 수사기관에 따르면 성형외과 등 미용의료 관계자가 온라인상에 부정적인 후기를 작성한 시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자유로운 정보공유가 공공의 이익에 합치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의료소비자의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정모씨(22·여)를 불송치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의사를 비방하려는 의도보다 공익적 목적이 컸다는 게 이유다.
정씨는 지난해 4월 한 네이버 카페에 ‘유령의사, 성추행 닥OO을 고발합니다’라는 동영상 링크를 댓글로 게시한 혐의를 받았다. 정씨는 5월엔 ‘유령수술, 동물용 실을 사용한 성형외과 의사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 링크가 포함된 게시글을 직접 작성했다.
정씨는 해당 게시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 “사람용 실이 아닌 동물용 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추근덕 대고”,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성추행을 저지르고” 등 영상에서 제기한 의혹을 정리해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해당 의사는 이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정씨를 고소했으나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함에 따라 정씨는 혐의를 벗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비방할 목적이 아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카페에다 올린 거기 때문에 죄가 안 된다는 것”이라며 “전체 의사들의 의료사고나 이런 것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올린 한 부분이라서 (무혐의 처분을 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의사 명예훼손 피소, '무혐의' 잇따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유사한 결정이 다수 일선 경찰서와 검찰 등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0월 역시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된 유모씨(50·여)를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리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씨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성형외과에서 하안검 재수술을 받은 뒤 부작용을 호소해왔다. 유씨는 지난해 7월 한 네이버 카페에 ‘하안검 부작용’이란 제목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유씨는 이 글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부작용을 언급한 뒤 “댓글 알바들 브로커들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이어 유씨는 병원 3곳의 이름을 적시하고 상담을 다녀왔다는 다른 회원 게시글에 “저 중 한 곳에서 하안검 재수술하고 부작용중”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이와 관련해 유씨는 자신이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대학병원 두 곳의 진단서를 제출하는 한편, 병원 명을 적시하지 않았고 주의를 당부하는 취지로 글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피의자가 제출한 진단서와 의사소견 등으로 보아 부작용 자체가 허위사실이라거나 피의자가 이를 허위사실로 인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게시된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피의자는 고소인의 병원이 있는 지역만을 자음으로 기재하였을 뿐”이라며 “모든 글을 종합하여 고소인의 병원을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무분별하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해당 인터넷 카페 회원이나 성형외과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 중 피의자의 글에 관심이 있는 특정인에 한정되어 있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검찰, 공익성 인정되면 '무혐의' 경향↑
비방 목적으로 수차례 글을 올렸더라도 혐의가 없다는 결정도 있다.
서울북부지검은 2019년 7월께 한 병원에서 지방흡입술을 받은 A씨가 이후 성형 관련 어플에 접속해 19회에 걸쳐 비방성 게시글을 작성한 사건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진짜 지방을 얼마나 무식하게 뽑아놨으면 이 지경이 됐을까”라는 등의 다소 격한 표현을 사용해 게시글을 작성한 사실이 인정됐지만 검찰은 “과격한 면이 일부 있으나 지방흡입술 결과에 대한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작성한) 목돈 챙겨서 한 번 날를 것 같아요”라는 표현 역시 “비방할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보이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아니라 피해자의 추측에 따른 의견표명에 불과하여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다수 게시물에 대해서도 검찰은 “고소인의 의원을 이용한 모든 환자가 그 결과를 만족할 수 없는 것이고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고소인의 시술 결과를 보고 실제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적 평가가 일부 저하되었을 수 있으나 인터넷 사용자들의 자유로운 정보 및 의견 교환에 따른 이익에 비해 크다고 하기 어렵다”고 무혐의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함께 고소된 업무방해 혐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관련사건을 다수 대리한 경험이 있는 손영서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신)는 “유사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헌법상 보장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인 점 △인터넷을 통한 정보 및 의견교환의 필요성이 증대된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2012도10392)이 있다”며 “법원은 소비자의 온라인 후기 작성에 있어 표현의 범위와 방법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수사기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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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