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배 불러야 시작하는 부산 중성화사업(TNR) ‘전국 꼴찌 수준’
2021.03.24 06:00
수정 : 2021.03.29 13:1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부산】 해마다 논란을 빚어온 부산시의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이 올해도 정상 추진이 어려울 전망이다. 사업의 실효성을 위해선 최소 2월부턴 고양이 포획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지만 기초지자체는 아직도 용역업체 입찰 과정에 머물러 있다. 이대로라면 4월 초 시작도 불투명해 보인다.
23일 부산시와 나라장터에 따르면 부산 남구, 강서구, 사하구, 해운대구, 기장군, 수영구, 동래구 등 7개 구군은 ‘2021년도 길고양이 TNR 위탁 용역 사업을 위한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 지자체에선 아직 입찰공고 조차 내놓지 못한 곳이 많다.
매년 이른 봄 발정기를 맞는 고양이 특성상 전국의 주택가 골목길에는 ‘아르르르릉’ 소리가 심각한 민원을 야기한다. 이에 전국 지자체에선 길고양이를 포획(Trap)하고 수술(Neuter)한 다음 2~3일 상태를 지켜본 후 다시 제자리에 방사(Return)하는 TNR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번식력이 왕성한 고양이는 1년에 두 번, 한 배에 여러 새끼를 낳기 때문에 발정기 시기에 중성화 수술을 해야 효과가 다음 해에 드러난다. 한 해라도 거르면 효과가 떨어져 무엇보다 사업의 연속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늦어도 2월에는 포획에 들어가 TNR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부산시는 길고양이 배가 남산만 해질 때쯤에야 사업을 시작할 처지다. 전국 꼴찌 수준이다. 이러한 ‘뒷북 행정’은 한두 번이 아니다. 부산시 TNR 사업은 매년 연말 부산시 동불복지지원단과 부산수의사협회 간에 협정을 맺어 관련 지침을 정하고 이를 각 구군이 예산을 보조받아 수의사협회 소속 동물병원을 통해 사업을 집행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시와 수의사협회는 저가 항생제 사용, 입찰 담합 등으로 논란을 빚었고, 그 결과 각 구군에서 용역업체 선정이 매번 늦어졌다. 이로 인해 부산의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은 해마다 제때 사업을 수행하지도, 계획한 목표 마릿수도 채우지 못한 실정이다.
올해 사업이 지체된 이유는 일명 캣맘(캣대디)으로 불리는 동물보호감시원, 동불보호명예감시원의 사업 참여와 더불어 수술 단가 협상이 늦어진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시와 수의사협회, 캣맘 단체의 이해충돌이 있었다. 그러다 이달 초에야 캣맘의 사업 참여를 비롯해 수술 단가를 15만원(고양이 한 마리당)으로 인상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그러는 사이 1~2월 남구, 기장군, 동래구 등이 낸 1차 입찰 공고는 유찰됐다. 현재 각 구군은 수의사협회가 통보한 단가 15만원를 수용하고 이를 반영한 입찰 공고를 새로이 내고 있다.
사업 지체도 문제지만 예산 증가에 따른 사업 축소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각 지자체는 단가가 오른 만큼 올해 계획한 목표 두수를 맞추기 위해 예산을 증액하거나 아예 사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새로이 짜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벌써부터 추경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일선 구청 한 담당자는 “사실상 대체 사업자가 없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면서 “목표 두수를 맞추려면 단가가 인상돼 예산 증가가 불가피하다. 일단 구 예산으로 집행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추경으로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남구의 경우 사업 축소를 계획했다. 당초 목표 계획은 예산 5400만원, 375두수였지만 단가가 15만원으로 오르면서 예산 4628만원, 313두수로 축소할 계획이다.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각에선 지침을 정하고 단가 협상을 조정해야 할 시의 역할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한 담당자는 “지침을 세우고 단가를 조정해야 할 시가 아예 손을 놓은 거 같다. 지침도 문제다. 중심을 못 잡고 여기저기 다 들어주니까 아예 사업을 못할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부경대 박진환 교수(부산시 동불복지위원회장)는 “매년 사업 시기를 놓치고 예산을 낭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TNR 사업의 목적에 맞게 사업 일정을 앞당기려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시 동불복지단은 이와 관련해 “올해 지침은 캣맘의 참여나 서로의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늦게 내려간 측면이 있다”면서 “내년 사업에는 올 연말까지 지침을 마련하고 1월에 사업을 꼭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한편, 올해 부산시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의 예산은 6억 9100만원이며, 총 5763두수를 목표로 잡고 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