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 수술해도 '과실'··· 음주의사 솜방망이 언제까지?

      2021.03.25 07:00   수정 : 2021.03.25 09:3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산부인과 주치의가 음주상태에서 수술을 하고 그 과정에서 임신 중이던 쌍둥이 중 한 명을 잃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음주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한 의사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령이 마땅치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의료법에는 의료인의 음주와 관련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처벌하는 게 고작이란 것이다.

이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품위 손상’ 항목을 적용해 자격정지 1개월 정도의 경징계만 하고 끝내는 사례도 여럿이다.


■음주 상태에서 수술해도 '과실'?
25일 국회에 따르면 의사 등 의료인이 음주상태에서 수술 및 시술을 해 환자를 위험에 빠뜨려도 이를 직접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이 마땅치 않다.
음주 상태에서의 의료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음주상태에서 수술 등을 해 환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밖에 없다. 현행 법제도는 의료법 이외의 불법으로 의사면허를 정지시키거나 취소시킬 수 없어 면허 규제를 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의료법상 자격정지의 근거인 ‘품위 손상’을 이유로 자격정지 1개월 등 경징계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음주 수술과 진료를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때문이다. ‘열 달 품은 제 아들을 죽인 살인자 의사와 병원을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인은 만취 상태의 주치의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아들을 잃었다며 처벌을 요청했다.

청원에 따르면 청원인은 아들·딸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던 만삭 임부로, 최근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게 됐다. 청원인은 “A씨가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와 제왕절개 수술을 했지만 결국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당시 A씨한테서는 코를 찌를 듯한 술 냄새를 풍겼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해 그가 음주상태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 등으로 입건했다.


■번번이 좌절 음주 수술·진료, 이제 바꿔야
문제는 A씨의 의료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마땅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지만 처벌이 약하고, 비슷한 사례에 상해 등의 혐의를 적용한 전례 역시 없다. 음주상태에서 병원에 와 수술을 한 행위를 업무상 ‘과실’로 봐야 한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비판을 쏟아낸다.

더욱 황당한 건 음주 의료인을 처벌하려는 노력이 국회에서 수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 이찬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의사가 마약이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료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폐기된 사례를 들 수 있다.

2014년 가천대 길병원 성형외과 전공의가 술에 취한 채 응급환자를 수술해 사회적 파장이 일어난 데 따른 것이었으나, 의사협회 등의 반발로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2018년 2월 한양대학교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체중 0.75㎏의 미숙아를 체중 75㎏인 것으로 착각해 혈당 조절 약인 인슐린 용량을 100배나 투여한 사건으로 의료인의 음주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으나 법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문제 전공의는 당직 근무 중 상습적인 음주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와 관련해 국회 보건복지위 한 관계자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기면 충분히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될 수 있다"며 "19대 때 불발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음주 같은 문제가 사회적으로도 엄격해져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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