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세계인 사로잡은 'K푸드 개척자'
2021.03.28 18:16
수정 : 2021.03.28 21:30기사원문
27일 영면에 든 농심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평소 자주 하던 얘기다. 맛있는 라면, 더 나아가 국민 건강을 위한 식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만 살았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라면 개발"
신 회장은 1930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큰형이다.
6·25전쟁 혼란 속에서 경찰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학업과 병행하면서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유통기한이 지난 쌀을 싸게 판매하려다가 실패한 뒤로 "식품의 가격보다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신 회장은 맏형인 신격호 명예회장과 일본 롯데에서 일하다가 형의 라면사업 만류를 무릅쓰고,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세웠다. 롯데공업은 1966년 1월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방공장을 준공하면서 본격적으로 라면을 생산했다. 신 회장은 1978년 기업명을 '농심'으로 바꿔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롯데그룹에서 독립했다.
그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라면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회사를 세울 때부터 연구개발부서를 따로 뒀다.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훨씬 수월했을 테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안성공장 설립 때도 선진국의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이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어서 농심이 축적해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했다.
■그의 손에서 나온 국민라면·스낵
신 회장은 무엇보다 업계에서 '작명의 달인'으로 통했다. '신라면'을 비롯해 '새우깡' '백산수' '우육탕면' 등 농심 제품 대부분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막내딸 신윤경씨가 어릴 적 민요 '아리랑'을 부를 때 '아리깡 아리깡 아라리요'라고 불렀던 것에서 착안해 '새우깡'이란 이름이 나왔다.
광고 카피도 직접 손댄 경우가 많았다. '신라면'의 광고 카피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은 물론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등 직접 만들어 유행시켰다. 뿐만 아니라 제품 포장의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신 회장의 손길이 닿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라면으로 등극했다.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 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96년 중국 상하이에 라면공장을 건설하면서 "농심의 브랜드를 중국에 그대로 심어야 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얼큰한 맛은 물론이고 포장과 규격 등 모든 면에서 있는 그대로 중국에 가져간다. 이것이 중국 시장 공략의 전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급화도 필요하다고 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데 국가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신라면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3~4배 비싸다.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는 후문이다.
'라면왕'은 뒷모습마저 아름다웠다. 농심은 신 회장이 별세하기 전 서울대 병원에 10억원을 기부했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치료해온 의료진과 병원 측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