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나 제대로 하지"… '퇴근 후 투잡' 직원이 못마땅한 회사
2021.03.30 17:34
수정 : 2021.03.30 17:51기사원문
#. 직장인 이모씨(30대)는 지난해 7년 간 다녔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경쟁사로 이직했다. 유명 대기업 직장인이던 이씨가 퇴사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유튜브 때문이다. 평소 유튜브를 즐겨보던 이씨는 취미를 살려 요리를 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소문이 회사 내에 들어간 것이다.
이씨는 "사람들이 뭐만 하면 '유튜브만 열심히 하고 직장일은 대충하느냐'고 타박하더라"며 "퇴근 후에 하는 일인데도 간섭하고 수익까지 얘기하라기에 하던 프로젝트만 끝내고 회사를 나왔다"고 털어놨다.
유튜브 및 각종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이씨와 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 피고용인의 투잡(two-job)을 못마땅하게 보는 회사와 퇴근 후 영리활동을 하려는 직원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퇴근 후 투잡직원 괴롭히는 회사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직장인의 퇴근 후 투잡을 겸업금지 위반으로 제한하는 것과 관련한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대개 피고용인의 퇴근 후 영리활동에 제동을 걸려는 사측과 이를 방어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이 법률 상담을 받는 사례다.
투잡 문제로 소속 직장과 갈등을 빚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건 시대적 현상이다. 기존엔 퇴근 후 상당한 노동력을 들여 본 직장 급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입만 벌어들였지만 유튜브와 각종 어플을 이용해 월급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례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고용인이 직장에 충실하길 바라는 회사에선 직장인의 외부 활동을 제한하길 원하고 직장인들은 퇴근 후 영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하다보니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기업 직장인 유튜버 '돌디(돌디와 재테크 스터디)'는 2019년 2월 돌연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회사와 문제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돌디는 넉달 만에 활동을 재개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로 전환한 상태였다. 돌디는 복귀 첫 영상에서 "회사가 유튜브 활동을 하는 걸 알고 여러 방법으로 못살게 굴었다"며 "유튜브 활동을 접고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려 했으나 이미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회사 생활이 지옥 같았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 밖에도 슈카(슈카월드), 이과장, 나름TV 등 유명 유튜버 다수도 유튜브 활동이 알려진 이후 회사 또는 상사와 마찰을 빚다 퇴사를 선택했다.
업체들은 직원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내 한 대기업 인사과 직원 조모씨(41)는 "입사하며 취업규칙으로 겸업금지를 명시하는 게 보통"이라며 "퇴근 후에 자기 사업을 하거나 밤 늦게까지 대리운전을 뛰고 와서 직장에서 제대로 일을 못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유튜버도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징계가 가능한지를 알아보고자 법률검토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수 대기업을 자문하고 있는 대형로펌 오모 변호사(36)는 "업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서 투잡 뛰는 직원을 규제할 수 있느냐고 법률검토를 요청해온 사례가 있다"며 "법무팀에서 논의를 끝내고도 혹시나 해서 다시 자문받는 건데, 특별히 문제되는 행동이 없으면 그냥 놔두는 쪽으로 결론 내는 게 보통"이라고 증언했다.
■중대 결격사유 없으면 징계 어려워
기밀유출이나 기업 명예훼손, 노무제공에 확연한 지장을 주는 활동이 아니라면 겸직금지 규정을 근거로 징계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최지희 변호사(법무법인 산하)는 "내부규정에 겸직금지의무 규정이 있다 하더라도 해고 등 징계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서 말하는 소정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돼야 한다"며 "기밀을 유출하거나 기업을 명예훼손하는 콘텐츠가 아니고 근로시간 외에 촬영됐다면 겸직금지위반으로 볼 수 없고, 이를 이유로 징계 또는 해고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판례 역시 퇴근 후 투잡을 허용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01년 재직 중인 직원의 겸직을 이유로 징계면직을 한 사안에서 "기업질서나 노무제공에 지장이 없는 겸직까지 전면적·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문제가 된 직원은 퇴근 후 다방을 운영한 것을 이유로 징계를 당한 것이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체에선 노동자들이 겸직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주변에서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을 질투해 괴롭히거나 회사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고 판단해 떠나도록 강요하는 경우 등이다.
모두 근로기준법 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만 유의미한 처벌에 이르는 사례가 많지 않아 보다 강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