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n번방·고유정·조두순··· 흉악범죄자 고액 변호 정당한가
2021.03.31 14:45
수정 : 2021.03.31 14:45기사원문
■"흉악범죄자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
일선 변호사들의 입장은 어떨까.
3월 3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해 보면 상당수 변호사들이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일지라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성범죄 가해자를 다수 변호한 이력이 있는 변호사 A씨는 “판결이 확정된 사건조차 나중에 뒤집힐 수 있고 재심사건들을 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0.0001%라도 억울한 점이 있으면 의뢰인 편에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설계된 게 지금의 제도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변호사 B씨 역시 “변호사법 제31조의 수임제한 사유에 ‘악자’는 들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국가가 법으로 제한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며 “공중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선택에 따른 부담도 변호사가 진다고 하면 문제될 건 없다”고 설명했다.
흉악한 범죄일수록 더 비싼 수임료를 내야 제대로 된 변호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C변호사는 “극악한 사건일 수록 많은 수사인력이 동원돼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아) 사건이 더 방대하고 어렵다”며 “범죄자가 그나마 제대로 된 변호를 받으려면 많은 돈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C변호사는 “범죄자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니, 그 자체가 범죄자에게는 징벌이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다수에 의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비난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수임하는 게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D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대중들이 먼저 판단을 내리고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변호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북한식)인민재판이 아니냐”며 “(그런 사건을 맡으면) 사무실 직원한테 전화해서 욕하고 협박하고 인터넷카페에 비방성 글도 올리는데 그런 폭력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본질은 돈 받고 형 깎아주는 것"
고액 수임료를 받고 흉악범 사건을 맡는 건 업계에도 부정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E변호사는 “누가 봐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한테 거액을 받고 법의 허점을 이용해 조금 (형을) 깎자고 하는 그런 경우가 많다”며 “‘좋은 변호사는 죽은 변호사’라거나 ‘돈만 주면 악마도 돕는 게 변호사’라는 말이 있는데, 업계 전체를 욕먹이는 짓”이라고 평가했다.
F변호사는 “(로펌)내부 논의를 해서 아동성범죄나 집단강간 같은 사건은 수임하지 말자고 암묵적 합의를 봤다”며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나아갈 길은 아니고, 어쨌든 우리가 변호해서 이기든 지든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게 법조인의 길이 아니냐 (그런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경력 10년차 변호사 G씨는 사건 수임과 관련해 비난을 받자 사임한 후 수면 아래에서 법률적 조언을 하는 사례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G변호사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었는데 로펌이 알려지고 변호사 이름까지 나오니 사임은 했는데 뒤에서 계속 조언을 하더라”며 “비난은 싫고 이득은 챙기고 싶고 그런 모습이 보기 안 좋은 게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법조계에서 흉악범죄 사건 수임이 영업 및 홍보의 일환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H변호사는 “마약, 성범죄나 아동학대 같은 사건을 살펴보면 변호사들이 거절한 사건이 특정 변호사에게 몰리는 경우가 있다”며 “가해자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이 일어나니 알음알음 찾게 되고, 별 생각 없이 영업전략 삼아 그런 사건을 맡는 게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