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학동 서당' 탈출…하동서 걸어 산청, 다시 버스 타고 진주로
2021.04.05 06:50
수정 : 2021.04.05 08:32기사원문
(경남=뉴스1) 한송학 기자 = "사전에 방범시스템 선을 끊었고 창문도 뜯어 탈출했습니다. 10시간 동안 오로지 걷기만 했는데 잡히지 않고 탈출에 성공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엽기적 폭행·가혹행위가 발생한 '청학동 서당'을 5년 동안 다녔던 A씨(21)가 지옥 같았던 서당 시절을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뉴스1은 최근 문제가 불거진 청학동 서당 2곳을 다녔다는 A군과 B군의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 서당에서의 폭행, 노동 착취, 부당대우, 관리소홀 등에 대해 전해 들었다.
A군은 'ㅅ시설'을 5년간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해당 시설에 보내져, 중학교 3학년 말 서당을 탈출하면서 서당과의 악연을 끊었다.
A군의 서당 탈출 과정은 첩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사전에 방범 시스템의 전기선을 끊고 창문을 뜯어냈다.
밤 9시 서당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A군은 잡히지 않기 위해 산길을 10시간이나 걸었다. 다음날 아침 하동 청학동에서 산청까지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진주로 향했고, 진주에 도착해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진주에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경기도 집으로 갔다. 버스 요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전에 돈도 조금씩 모았다.
A군은 "창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바깥쪽에서 못을 박아 놓아 문을 열지 못했다. 그래서 창문을 뜯어냈다"며 "우선 탈출하는 게 목적이어서 집에 전화하기보다는 걷기만 했다. 진주에 가서 부모님께 전화했고, 집에 돌아가서 지금까지의 일을 알려 서당을 안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A군은 서당의 비위생적인 식당 운영과 여자아이들의 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A군은 "튀김 요리를 한 후에는 사용한 식용유를 주전자에 받아놓고 기름이 검은색이 될 때까지 사용했다"며 "식사 준비에는 항상 여자아이들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남자아이들도 각종 노동에 동원됐다. 건물을 짓는데 벽돌을 날라야 했고, 고로쇠 수액 채취 시즌에는 매일 아이들을 동원해 고로쇠 물을 날랐다.
A군은 "20ℓ 이상의 물통으로 기억되는데, 고로쇠 수액이 나올 때는 초등학생들은 2~3개, 중고등학생은 3~4개의 물통을 거의 매일 산꼭대기에서부터 날라야 했다"며 "채취한 고로쇠 수액은 판매했는데 노동을 한 아이들에게는 초코파이 한 개를 줬다"고 폭로했다.
A군은 원장의 폭행도 지나칠 정도로 심했고, 원장 등 관리자의 관리소홀로 서당에서 같이 지내는 형들도 아이들을 자주 폭행했다고 털어놨다.
A군은 "야구방망이 손잡이 정도 굵기의 검은색 전기용 테이프를 감은 60㎝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렸다"며 "발바닥을 때리다가 발이 부풀어 오르면, 엉덩이를 때리고, 다시 손바닥을 때리는 등 거의 폭행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주 때렸다”며 "제일 큰 형이 기분이 나쁘면 아이들을 모두 한방에 넣어놓고 폭행하기도 했다. 발을 벽에 올리고 엎드려뻗쳐를 시켜 축구화를 싣고 배를 찼다. 원장한테 형들의 폭행을 말해도 별도의 조치가 없었다. 불러서 주의만 주는 정도에 그치다 보니 항상 형들이 두렵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A군은 원장이 아이들이 부모와의 연락도 차단해 놓고 감금 수준으로 아이들을 관리했다고 토로했다.
A군은 "제가 탈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서당에서 다니지 않기로 했는데, 원장이 부모에게 전화해 '아이는 밖에 나가면 큰 사고를 칠 것이기 때문에 나가면 안 된다'고 계속 말했다"며 "제가 서당을 나가는 것을 계속 막았다"고 주장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ㅈ시설'을 다녔다는 B군(21)의 증언에서는 "서당에서의 관리 부실이 학생들의 폭행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폭로됐다.
B군은 "형들은 기분이 좋지 못하면 이유 없이 후배들을 폭행하곤 했다. 형들에게 뺨을 맞고 한 친구가 도저히 못 참아서 훈장에게 말하니 형들을 불러 사과를 시키고 끝냈다“며 ”적절한 처벌이 없었기 때문에 형들의 폭행은 계속됐다. 형들의 보복이 두려워 더는 훈장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을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