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추락을 예고한 5가지 장면
2021.04.08 18:48
수정 : 2021.04.11 00:16기사원문
②장면2: 고민정 악어의 눈물
③장면3: 박영선의 꼰대 선언
④장면4: 내로남불 김상조, 박주민
⑤장면5: 안철수의 깨끗한 승복
[파이낸셜뉴스]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한 방에 갔다. 민심은 무섭다. 민주당은 작년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장면1: 무리한 당헌 개정
작년 11월 민주당은 당헌을 바꿨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해서다. 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치를 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은 문재인 대표 시절에 만든 것이다. 이걸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꿨다.
당원 86.64%가 당헌 개정에 찬성했다고 하지만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전체 권리당원 80만명 가운데 21만명만 투표에 참여했다. 26% 투표율이다. 당원 4명 중 3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걸 당원 86.64% 찬성이라고 포장했다.
욕심이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서울·부산시장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원인 제공자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논란은 지그시 밟았다. 문 대통령도 당헌 개정을 옹호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헌법이 개정될 수 있듯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는 없다"며 "당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런 걸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다.
◇장면2: 고민정 악어의 눈물
고민정 의원이 박영선 선거 캠프 대변인직에서 사퇴했을 때 이제야 민주당이 정신을 차렸구나 했다. 고 의원은 이른바 '피해호소인 3인방' 중 1인이다. 심각한 오산이었다. 고 의원은 자중하기는커녕 캠프 밖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박 후보를 도왔다.
고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퇴의 변을 들춰봤다. "피해자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숱한 날들을 지내왔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 피해자에 고통을 안겨드린 점 머리숙여 사과한다," "직접 만나뵙고 진실한 마음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이를 자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한 나만 바보가 됐다.
고 의원은 투표 당일인 7일 페이스북에 "쉼없이 달렸다.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맞으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는 두 발로"라는 글을 올렸다.
순진하게도 나는 고 의원이 유세 기간 중 피해자를 찾아가 꼭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만약 그랬다면 박영선 후보 표가 적어도 한 표는 늘지 않았을까. 이제 선거는 끝났고, 고 의원은 소중한 기회를 잃었다. 피해자를 찾아가 진실한 마음을 전할 기회는 사라졌다. 피해자의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오세훈 당선인의 연설을 듣고 그동안의 힘든 시간이 떠올라 가족들과 함께 울었다." 거기 고 의원이 낄 자리는 없다.
◇장면3: 박영선의 꼰대 선언
4·7 보선은 좀 과장하면 청년 혁명이다. 드디어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필 이럴 때 박영선 후보는 청년과 대척점에 섰다. 그것도 청춘의 거리인 신촌 유세에서 "20대의 경우 과거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는 40대와 50대보다는 경험치가 낮다"고 말해 청년 폄하 논란을 불렀다. 퍼뜩 머리에 '라떼 이즈 호스'(나 때는 말이야) 유머가 떠올랐다.
윤희숙 의원(국힘)은 "청년들의 절규를 헛소리 취급한다"고 비판했다. 야당 의원의 말이니 으레 그러려니 치자. 하지만 이재명 경기 지사가 "모든 국민이 그렇듯 청년들 역시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주권자"라고 두둔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은 노동귀족과 한통속이 됐다. 그 최대 피해자가 청년층이다. 대기업, 정규직 좋은 일자리는 죄다 기득권 노조가 차지했다. 이에 분노하는 청년을 두고 경험치가 낮다고 하면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4·7 보선에서 청년층의 대거 이탈은 자업자득이다.
◇장면4: 내로남불 김상조, 박주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참여연대 시절 재벌개혁론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것도 삼성그룹과 정면으로 붙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범을 보였다. 그런 그가 작년 여름 전월세 상한제를 실시하기 직전에 전세값을 왕창 올릴 줄은 미처 몰랐다. 상한제 실시 전이니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부동산 정책이 언제 어디로 굴러갈지 빠삭하게 알 수 있는 자리다. 전세값은 14%가 아니라 5%만 올려받는 게 도리다.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변호사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작년 6월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전월세 상한을 5%로 묶고,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주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그런 그가 역시 상한제 실시 직전에 전세값을 5% 넘게 올렸다는 소식은 많은 이를 낙담시켰다. 박 의원은 뒤늦게 세입자와 재계약을 맺은 걸로 알려졌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난 1일 당시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대국민 성명에서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졸지에 '내로남불당'이 됐고, 유권자들은 매를 들었다.
◇장면5: 안철수의 깨끗한 승복
서울시장 선거에서 초반 기세를 올린 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여야 누구랑 붙어도 이기는 걸로 나왔다. 하지만 그는 욕심을 접고 국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고, 경선 결과에 승복했다. 단순히 승복만 한 게 아니다. 그는 오 후보 유세 현장을 스무번 가까이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사실 오 후보가 올린 득표율의 절반은 안철수 몫으로 봐도 무방하다.
안철수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킹 메이커 역할을 했다. 그때 서울시장 자리는 오세훈 사퇴로 비어 있었다. 당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시민단체 대표로 나선 박원순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그 덕에 박원순 시장이 탄생했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 안철수가 이번엔 오세훈의 복귀를 도운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혹시 오세훈 당선은 오 후보가 잘나서 또는 국힘이 잘해서 된 건 아닐까. 미안하지만 아니다. 100% 반사이익이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8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4·7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며 개혁의 고삐를 늦추면 당은 다시 사분오열하고 민심을 회복할 천재일우의 기회는 소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년 3월 대선이 열린다. 이번에 회초리를 맞은 민주당과 트로피를 받은 국힘의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어느 쪽이든 유권자 앞에서 까불면 다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