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남자영화, 재평가 받기 충분하다
2021.04.10 08:16
수정 : 2021.04.10 08:15기사원문
2014년 하반기에 개봉한 <좋은 친구들>은 그 목마름에도 끝이 다가왔단 걸 알린 작품이다. 충무로의 젊은 연출자 이도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지성, 주지훈, 이광수가 주연했다.
개봉 당시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과 톱스타 정우성이 전면에 나선 <신의 한수> 등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을 만하다.
마틴 스콜세지의 저 유명한 작품 <좋은 친구들(Good Fellas)>과 같은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온 세 친구의 비극이다.
초등학교부터 이어온 세 친구의 우정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현태(지성 분), 인철(주지훈 분), 민수(이광수 분)의 초등학교 졸업 즈음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세 친구는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압수된 워크맨과 각자의 졸업장을 훔쳐 나와 산으로 향한다. 졸업을 기념하여 정상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민수가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친다. 민수를 챙겨 내려오던 현태와 인철은 지칠대로 지친 나머지 조난까지 당한다.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와중에 세 친구는 외딴 오두막 안으로 몸을 피한다. 인철은 현태와 민수를 남겨둔 채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홀로 산을 내려간다.
그로부터 십수 년 후로 영화는 옮겨간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남자로 성장한 현태는 소방관으로 일하며 청각장애를 지닌 아내와의 사이에 귀여운 딸을 두고 있다. 인철과 민수 역시 현태의 곁에서 절친한 친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르다. 겉만 번지르르한 인철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현태와는 달리 보험금을 노린 거짓 사고로 자신이 속한 회사에 피해를 입히기 일쑤다. 민수는 알코올에 의존하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불성실한 인간이다.
작은 의리는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
영화는 우정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다. 불완전한 우정과 집단 내의 작은 의리가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문제는 인철의 제안에서 시작된다. 인철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며 보험사기를 제안한다.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현태의 어머니와 짜고서 인철과 민수가 오락실을 불 태운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어긋나며 평온해 보였던 삶도 절망스럽게 변해간다.
현태의 어머니와 인철의 공모는 인철의 말처럼 모두가 이득을 보는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친구집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 울타리를 넘어서 사건을 바라보면 인철의 계획은 자신이 속한 보험회사에게 고의적으로 피해를 입히려는 보험사기에 불과하다.
인철의 계획이 틀어져 되돌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인철과 민수는 현태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털어놓지 못한다. 울타리 너머의 큰 의리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의리에만 충실했던 결과다.
영화가 가장 공들여 연출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라도 제 딴에는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는데, 그로부터 되돌릴 수 없는 문제가 초래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영화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는 세 인물의 모습을 비추고, 이들이 빚어내는 심리적 긴장관계에 힘입어 영화를 끌어간다. 의도치 않았던 사건으로 절친했던 세 친구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각자의 목적을 향해 내달리는 인철과 현태의 모습이 밀도 있는 내용전개와 어우러지며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세 배우의 돋보이는 연기
화려한 삶을 동경하다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는 인철은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 상황에서 우정을 지키고 상황을 수습하려는 고군분투가 너무 절망적인 나머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러한 인철의 모습은 배우 주지훈의 물오른 연기를 통해 현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급격한 내적 심리변화를 정적으로 풀어내야 했던 지성과 더없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민수의 모습을 적절히 연기해낸 이광수까지 세 배우의 연기는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결말은 영화의 또 다른 멋이다. 오프닝에서 사라졌던 워크맨의 행방을 비추며 작은 의리를 완전히 지켜냈던 인철과 그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현태의 불완전한 우정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오프닝이 비로소 영화 전체를 꿰뚫는 의미를 획득하고, 결말과 시작이 서로 응답하는 수미상관의 형식미까지 얻는다.
이외에도 사려깊은 장면장면에서 구상단계에서부터 많은 준비를 한 흔적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모처럼 잘 만들어진 영화를 감상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칼질과 노출, 겉멋과 허세로 점철된 천박한 누아르 사이에서 적절하면서도 절제된 선택이 빛난 흔치 않은 남자의 영화로 남았다고 판단한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