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사회'와 거리두기
2021.04.15 18:56
수정 : 2021.04.15 18:56기사원문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의 풍요는 빈부 격차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지만 기후변화의 위기와 자연재해, 환경오염 등 현대사회의 위험요소는 매우 일상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던 올리히 벡의 명제가 더욱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따뜻한 봄날 야외 나들이를 가기 전에 가장 먼저 초미세먼지 농도부터 확인해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 대기오염 탓이다. 편서풍을 타고 넘어오는 강력한 황사로 인해 탁한 공기의 주범으로는 늘 '대륙'이 꼽힌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를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다. 실제로 2019년 부산연구원이 분석한 부산 지역 미세먼지 농도 실태에 따르면 선박과 화물차량, 항만 하역장비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2차 생성물질이 부산 전체 미세먼지의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단 부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주요 해안도시의 전체 미세먼지 중 선박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목포 59.3%, 시흥 49.3%, 거제 42.7% 등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바다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역시 대기오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청정한 하늘을 되찾고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우리의 실천이 육지뿐 아니라 당장 바다에서도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생활, 수송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대기오염 감축을 위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과 더불어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 등을 연료로 사용하는 친환경 선박 개발과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 같은 범정부적 노력에 발맞춰 2019년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사용기준 준수 여부에 대한 단속을 실시하고, 위반행위 39건을 적발해 개선조치를 하는 등 대기오염의 주범인 황산화물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올해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가 주관하는 해양환경 규제 위반행위 특별단속에 동참해 바다환경의 파수꾼으로서 깨끗한 바다를 위한 국가 간 협력에도 힘을 보탤 계획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성찰적 근대화'를 제시했다. 인간의 삶과 안전 그리고 행복을 고려한 발전방식인 '성찰적 근대화'를 이룩하는 힘은 결국 사회 구성원의 합리적인 유대와 꾸준한 단결이다.
해양경찰도 해양종사자, 관계기관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대기환경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해양공간에서 미세먼지 저감방법 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해양환경을 위한 끈끈한 민관 협업과 사회적 연대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다소 더딜지언정 따스한 봄날의 하늘은 조금씩 본연의 색채를 조금씩 되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를 할퀴었던 '위험사회'는 이제 마주하지 않을 때도 됐다.
서승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