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본질과 김어준

      2021.05.04 18:27   수정 : 2021.05.04 18:27기사원문
이정현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1000만원 벌금형 판결을 받았다.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방송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2014년 세월호 사건 발생 시 KBS 보도에 개입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1심 법원의 말처럼 "아직 한 번도 적용된 적 없는 처벌조항 적용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조항은 방송법이 제정된 1963년부터 포함되어 있었으나 선언적 내용으로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다.
정치권 등이 방송 보도에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야당 시절 여당의 '방송 장악'을 비판하던 문재인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경각심 없이 행사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언론 간섭이 더 이상 허용돼서는 안된다는 선언"이라고 강조한 사법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만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방송의 공적 책임,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방송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는 반대급부로 요구되는 의무만은 아니다. 전파가 공적 재산(public domain)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방송의 본질적 의무에 해당한다. 방송이 특정 정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소유라는 인식은 방송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핵심 덕목이다.

김어준씨가 연일 논란이 되고 있다. 야당은 주로 과다한 출연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과녁을 제대로 겨눈 건지 의문이다. 김씨는 본질적으로 언론을 이용한 돈벌이에 치중하는 사람이다. 인터넷신문, 팟캐스트 등에서 진보좌파 스피커를 자임한 것도 열성적 지지층이 있는 그쪽이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돈이 된다면 어떤 황당한 음모론도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 고의침몰설, 2012년 대선 개표부정설 등이 그것이다. 영화제작비를 모금하고 영화로 돈을 번 것도 음모론에 열광하는 지지층 덕분이다. 돈이 목적인 사람에게 돈을 많이 번다는 지적이 비판으로 들릴 리 만무하다. 음모론이 거짓으로 밝혀져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방송에서도 똑같다.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는 누가 써준 것이라는 음모론, 법원에서 부인된 조국 전 장관 딸의 일방적 주장을 방송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노골적으로 선거 개입에 나섰다. 4·7 재보선 국면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5회로 가장 많은 행정지도를 받았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방송의 본질과 거리가 먼 방송이고 김씨에 대한 비판은 그에 집중되어야 한다.

더 황당한 것은 민주당이다. 김씨에 대한 감싸기를 넘어 "김어준 없는 아침이 두려울" 정도로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다. 비판론과 마찬가지로 옹호론 역시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돈을 얼마나 버는지, 청취율이 얼마인지는 김어준을 지키는 논거가 될 수 없다. 알고 보면 주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협찬으로 돈을 버는 것이고, 서울 시내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에서 주파수를 맞추고 있기 때문 아닌가. 민주당은 공정의 가치가 훼손된 데 대한 청년들의 분노가 표출된 게 선거 민심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공정성이 가장 요구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방송이다.
방송의 공정성, 객관성은 법적 의무로까지 격상되어 있다. 특정인 퇴출 요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김씨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키는 방송을 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집권당이 사유화된 정파적 방송을 결사옹위하고 나서는 건 참으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 아닌가.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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