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내려고 재벌이 대출 받는 나라

      2021.05.04 18:27   수정 : 2021.05.04 18:27기사원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家) 사람들이 상속세를 내려고 주식을 담보로 맡기거나 은행 대출을 받았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서 알려진 내용이다. 이 부회장 등이 내야 할 상속세는 총 12조원이 넘는다.



이 부회장은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전자·물산·SDS 주식을 법원에 공탁했다. 상속세를 6년에 걸쳐 나눠서 내는 연부연납 담보물이다.
고인의 배우자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그리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주식을 공탁하는 한편 은행 등 금융사에서 많게는 1조, 적게는 수천억원 대출을 받았다.

대기업 상속인들이 세금 때문에 주식을 공탁하거나 대출을 받는 것은 이미 정해진 코스가 됐다. 앞서 구광모 LG 회장, 조원태 한진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도 부친 사망 이후 상속세를 낼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증여세 연부연납을 위해 주식을 담보로 맡겼다. 지난 2006년엔 정용진·유경 남매가 증여세를 주식으로 물납하기도 했다.

재벌이 세금 때문에 대출을 받는다는 소식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그만큼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징벌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현재 상속세율은 최고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여기에 최대주주 할증률을 더하면 60%에 이른다.

그래도 재벌은 나은 편이다. 주식을 맡길 수도 있고, 신용이 높아 금융사 대출도 비교적 쉽다. 중소기업들은 상속세 때문에 아예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과세표준 3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50%)이 붙는다. 가업승계 공제가 있다지만 영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니 어중간한 중소기업들은 이참에 사업을 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기업 상속세를 지금처럼 걷는 게 과연 최선인지 깊이 고민할 때가 됐다. 상속세는 부의 균등화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가업승계를 단절시키고, 상속인들이 오로지 세금 때문에 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이라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일부 국가는 상속세를 아예 없애기도 한다. 살아서 소득세를 낸 걸로 충분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도 정치권도 상속세율을 내릴 계획이 없다. 그렇다면 공익법인 활용이 차선이다.
의료·교육·보육 등 공공선을 행하는 공익재단에 주식을 넘기면 상속·증여세를 면제하는 것이다. 지금은 5%까지만 면제다.
이 비율을 대폭 올리는 방안을 깊이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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