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훼방꾼 변협

      2021.05.07 17:08   수정 : 2021.05.07 18:4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대한변호사협회가 단단히 화가 났다. 로톡, 네이버 같은 인터넷 플랫폼 때문이다. 변협은 지난 3일 이사회를 열고 '변호사 광고업무 규정'을 전부개정했다.

이름부터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으로 바꿨다. 로톡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와 발을 끊으라는 게 핵심이다.
새 규정은 3개월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8월4일부터 시행된다.

현재 국내 변호사는 3만명이 약간 넘는다. 이 중 개업 변호사가 2만4930명(5월6일 기준)이다. 로톡에 참여한 변호사는 3966명으로 집계된다. 개업 변호사의 16%에 해당한다. 만만찮은 숫자다. 한국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려면 변협에 등록부터 해야 한다(변호사법 7조). 이러니 변협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변호사 시장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2월 취임한 이종엽 변협 회장은 "백절불회(百折不回)의 자세로 외부의 환경에 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로톡과 한판 승부는 시험대다. 변협은 로톡을 꺾을 수 있을까? 법률 소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새 규정 어떤 내용인가

변협은 로톡 같은 "(온라인) 사무장 로펌이 법조시장을 장악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차단하려 회원의 활동 반경을 새로 정했다. 근거는 변호사법 34조다. 이 조항은 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동업을 금지한다.

먼저 변호사 개인의 온라인 광고는 넓게 허용했다. 개인 홈페이지, 유튜브,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서 변호사가 자기 PR하는 건 자유다. 네이버, 다음, 구글 같은 포털에서 광고하는 것도 허용된다.

하지만 로톡 같은 법률 플랫폼이 변호사를 광고, 홍보, 소개하는 행위나 영업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 형량을 예측하는 광고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요컨대 변호사들은 로톡에서 다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두가지는 로톡의 핵심 비즈니스다. 변호사가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 로톡은 해당 변호사를 띄워준다. 형량예측은 법률 소비자의 발길을 끄는 미끼상품이다.

변협이 까칠하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2년부터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들이 한해 평균 1600명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10회) 변시에는 1706명이 붙었다. 지난 10년 간 누적 1만6000명이 넘는다. 사법고시 시절에 비하면 무한경쟁 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 판국에 로톡 같은 플랫폼은 자격증도 없이 시장 파이를 쪼개는 무뢰한 같은 존재다.

법조판 타다에 비유

문제는 변협의 행동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사실 넓게 보면 직역이기주의에 속한다. 의사, 약사, 공인중개사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의사는 원격진료 말만 나오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다. 약사들은 소화제·두통약을 편의점에서 파는 것조차 결사반대한 전력이 있다. 공인중개사들은 변호사들이 만든 부동산 중개업체에 눈을 부라린다.

변협과 로톡의 싸움을 법조판 타다에 비유하기도 한다. 모빌리티 혁신을 모토로 내건 타다는 소비자의 우렁찬 박수를 받았지만 결국 택시 기사들의 반발 속에 서비스를 접었다. 표를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은 택시 편에 섰다. 혁신은 무너졌고, 택시는 기득권을 지켰다. 변협으로선 로톡을 제2의 타다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버추얼 로펌, 곧 가상로펌 논의가 한창이다. 사무실 없이 오로지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다. 이에 대해 미국변호사협회(ABA)는 지난 3월 공식견해(Formal Opinion 498)를 내놨다. 오프라인에 실재하는 법률사무소(Brick and mortar law firm)가 없어도 가상 개업을 허용한다, 다만 의뢰인의 비밀유지와 네트워크 안전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내용이다.

가상로펌은 로톡과 같은 법률 플랫폼과 다르다. 다만 ABA가 혁신을 활용한 법률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지난해 워싱턴DC 변호사협회가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수임료를 받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4·7 보선의 교훈

협회는 이익단체다. 올해로 창립 69년을 맞은 변협은 변호사 이익을 지키라고 만든 단체다. 하지만 변협은 여느 협회와 다르다. 대법관 추천권도 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추천권도 있다. 검찰총장을 뽑을 때도 변협 회장이 추천위원으로 들어간다. 국사(國事)에서 맡은 역할이 막중하다.

요컨대 변협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그 점에서 법률 플랫폼 로톡을 상대로 한 싸움은 보기에 민망하다. 꼭 이런 방법밖에 없나 싶어서다. 혁신을 수용하는, 능동적인 선제 대응이 아쉽다.

4·7 보궐선거에서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공정을 중시하는 시대 흐름을 놓쳤다. 청년들에게 민주당은 그저 기득권에 집착하는 '꼰대'였을 뿐이다. 여론을 등진 정당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어디 정당뿐이겠는가. 변협이 전가의 보도로 여기는 변호사법 34조는 변호사와 제3자 간에 소개·알선 등의 대가로 금품, 향응, 그밖의 이익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척 들어도 테이블 밑에서 오가는 은밀한 거래가 떠오른다. 바로 이 조항을 법률 혁신 플랫폼에 들이대는 건 무리다.

변협이 로톡과 싸움에서 늘 기억해야 할 변수가 있다. 바로 법률 소비자다.
결국 승패는 여론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달렸다. 변협이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면 먼저 아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법률 소비자들은 어느 변호사한테 일을 맡겨야 할지 난감하다. 언제까지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
·소비자가 플랫폼에서 여러 변호사를 비교한 뒤 적임자를 고르는 게 공정한 시장 아닌가?
·실력도 있고 수임료도 적당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 아닌가?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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