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母子의 새봄… 마음에도 화폭에도 꽃이 피었네요
2021.05.10 17:18
수정 : 2021.05.10 18:04기사원문
추계예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94세 노모를 모시고 사는 이현영 작가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택배 운송을 겸하고 있다. 바쁜 하루 중에도 틈틈이 화업을 계속해온 작가는 삶의 진수를 작품에 담기 위해 늘 삶과 죽음을 탐구하며 그림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자연과 풍경을 통해 표현해왔다.
택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리던 그의 어머니 김두엽 작가는 10여년 전인 2010년, 83세가 되던 해 어느 날 자신의 손으로 그린 사과 한 개를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일거리도 없고 별달리 할 일이 없었을 때 시작한 그림 그리기는 그의 삶을 새롭게 바꿨다.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미국 할머니 화가 '모지스'와 85세에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영국의 '로즈 와일리'에 비견되며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김두엽 작가는 지난 4일 그의 그림이 담긴 에세이집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를 내놓기도 했다.
화가로서 성공을 꿈꿨으나 쉽지 않았던 지난날들에 대해 어머니께 죄송함을 갖고 늘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해온 아들과 택배일로 바쁜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아들의 꿈을 항상 응원하며 함께 그림을 그려온 어머니의 모습은 5년여 전부터 방송 등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2인전을 개최해왔다. 하지만 올해 전시는 이 두 작가에게 더욱 특별하다. 이현영 작가가 지난해 결혼을 한 후 그린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하는 첫 전시이기 때문이다.
10일 이현영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제가 정했다. 어머니와 아내와 저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맞이하는 첫 봄이어서 '우리 생애의 첫 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며 "내가 다루는 소재는 대부분 나무와 풀과 산 등 풍경으로 과거엔 주로 생명을 잉태한 겨울나무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결혼 이후 메말랐던 풍경이 촉촉해졌다. 최근 들어 잎이 돋은 나무들을 그리는게 좋았다"고 말했다. 전작에서 주로 드러나던 무채색의 모호한 형상과 흐릿한 이미지들은 더욱 뚜렷해졌고 색채도 더욱 화사해졌다. 생동하는 봄, 땅의 기운을 발산하는듯 붉어진 가지와 풍성하고 푸른 잎사귀가 더욱 찬란했다.아들을 장가 보낸 김두엽 작가에게도 '내 죽어도 여한이 없을 봄'이 왔다. 나이 드니 기운이 없다 하면서도 어느샌가 작은 거실의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의 신작 '나무 아래에서' 속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의 모습이 더욱 정겹다. 이제 두 가족이 아닌 세 가족이다.
이 작가는 "난 지난 주말 허리 디스크로 수술도 받았지만 어머님은 저보다 더 건강하신 것 같다"며 "그림을 그리기 전엔 지루해 하시면서 때때로 어지러움증과 수전증으로 고생하셨는데 그림을 그리며 더욱 건강해지셨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택배 일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화가도 그림을 그릴 땐 직장인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하듯 그림을 그려야 하고 본 그림에 집중하기 전 두어시간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한데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한게 아쉽다. 1~2년 정도 후에 다시 신작 전시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