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령, CEO 처벌이 능사 아냐
2021.05.17 18:00
수정 : 2021.05.17 18:00기사원문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일어난 이선호씨 사망사고를 비롯해 최근 근로자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노동계를 중심으로 사업주 처벌을 더 세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산재 감축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13일에는 직접 이선호씨 빈소를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등 현장에서 답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여야 정치권도 중대재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노동계는 사고 시 각 기업 대표에게 최종 책임을 묻고, 중대재해 범위도 넓히자는 입장이다. 반면 재계는 대표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을 경우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반발한다. 중대 산업재해, 특히 근로자 사망사고는 기업이 책임을 면키 어렵다. 변변한 안전장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었다면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 2016~2020년 9월까지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는 약 9500명에 달한다. 수없이 산업안전 강화를 외쳤지만 여전히 사고가 줄지 않으니 기업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지나친 형사처벌은 기업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사업주가 곧 오너인 대다수 중소기업은 자칫 문을 닫을 각오까지 해야 할 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사업주 처벌 최소화를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잖아도 기업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만 해도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조항이 1200개에 이른다. 여기에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시행되면 기업 활동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 예방은 기업만의 책임도 아니다. 근로감독 주체인 중앙정부, 지자체가 기업과 머리를 맞댈 때 완성도가 높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 노사 모두 불만이 컸다. 같은 일이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제정안의 정신을 시행령에 충실히 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