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

      2021.05.27 18:00   수정 : 2021.05.27 18:00기사원문
애주가들 사이에서 '맛 없는 한국맥주'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홀짝거린 외국 맥주의 풍미에 맛들인 혀를 국내 맥주 제조사는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2012년 "북한 대동강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서울특파원 다니엘 튜더의 폭로(?)기사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대동강 맥주는 옥류관 냉면과 함께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북한 먹거리였다. 영국과 독일의 양조설비를 도입해 2002년부터 생산했다.
맥아비율과 향에 따라 1번부터 7번까지 다채로운 라인업을 갖췄다.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10년 대북제재 조치로 수입중지됐다. 가끔 대동강맥주를 마시려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원정 가는 애주가도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이 폐쇄된 뒤 물건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수제맥주는 미국 크래프트 비어와 동의어이다. 맥주 제조자의 개성만큼이나 맛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말 미국양조협회가 개인을 포함한 소규모 양조장이 소량 생산하는 로컬 맥주를 뜻하는 용어로 지정하면서 생겼다. 한국에선 2002년부터 유행한 '하우스맥주'가 원조 격이다.

최근 CU 편의점 맥주판매 1위에 등극한 곰표 밀맥주가 화제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까지 제쳤다. 세븐브로이가 곰표라는 밀가루를 생산하는 대한제분과 협업해 만들었다. 물건이 달리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월 20만개에서 300만개로 생산량을 늘렸는데도 '완판'됐다. 제주맥주는 업계 1호로 코스닥에 상장됐다.

시장규모 1000억원대의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은 160여곳이다. 5~6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가내수공업 수준이다.
맥주를 캔이나 병에 담을 설비가 없어서 편의점과 대형마트 납품은 언감생심이다. 특히 온라인 판매 불허 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맛보고 싶어도 접근이 어렵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무늬만 수제맥주'의 빅히트는 반갑지만, '진짜 수제맥주'는 도산 위기란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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