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도중 교실뒤 누운 학생…"건드리면 아동학대로 신고해요"
2021.06.12 07:15
수정 : 2021.06.14 10:20기사원문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최근 한 지역 초등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1학년 학생이 사라져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수업시간이 돼도 학생이 교실로 돌아오지 않자 담임 교사뿐 아니라 교장과 교감까지 나서 학교를 샅샅이 뒤졌다.
30분간 찾은 끝에 학교 구석에 숨어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담임인 A교사(45)는 따끔하게 혼내고 싶었지만 "안전사고 위험이 있고, 다른 학생이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선에서 소동을 매듭 지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다른 친구까지 합세해 더 많은 인원이 쉬는 시간에 나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혼비백산 속에서 겨우 찾았는데, 학생들은 숨바꼭질이라 생각했는지 웃고만 있었다.
A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통제로 도덕성을 배워나가는 단계"라며 "학생이 학교 규칙을 어기거나 잘못해서 혼내면 아동학대라고 민원이 들어오니까,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을 단단히 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교사 지시 불이행·수업 방해 비일비재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일선 학교 교사들은 교실에서 지시 불이행이나 수업 진행 방해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아동학대 민원 우려에 교육적 지도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과거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도 A교사는 교직생활에 회의감을 들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A교사는 "수업 시간에 몇 명이 떠들어서 제일 목소리가 큰 학생에게 떠들지 말라고 했다"면서 "그 학생이 대놓고 '나만 떠들었나, ○발'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해당 사실을 학부모에게도 알렸지만 "아이가 그럴 수 있지"라며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왔다. A교사는 "교사가 퇴직하는 시기는 교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나 학부모가 정해주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교사노조연맹이 최근 파악한 사례를 보면 학생들이 교사 지도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교사는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보고 있는 학생에게 교과서를 펴라고 했지만 학생은 "싫은데요"라며 지시를 무시했다.
수업 도중에 자리를 벗어나 교실 뒤에 학생이 누워있는 사례도 있다. 교사는 학생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학생에게 "몸에 손대면 아동학대로 경찰에 전화할 것"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교실 뒤에 세워두거나 복도로 내보내면 '정서적 학대'
과거에는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교실 뒤에 세워두거나 교탁 옆에 앉히는 풍경이 흔했다. 복도에 손을 들고 있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불가능하다. 수업 중에 교실 뒤쪽에 세워둘 경우 '정서적 학대행위'로 아동복지법 위반 소지가 있는 탓이다. 문제 학생을 복도로 내보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한 시·도 교육청 관계자는 "교실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은 학습권 침해가 될 수 있다"며 "정서적 학대 소지도 있어 허용되는 생활지도수단은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A교사가 있는 학교에서는 학교규칙이나 규정 등에 학생훈육에 관한 사항을 추가하려고 했지만 규정을 결국 손보지 못했다. 관할 교육청에서 아동학대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도 교육청에서는 일선 학교에서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한다면서도 현재 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상벌점제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교권침해가 심할 경우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시·도 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의 정서적·심리적 문제 때문이 아닌 악의적으로 교사를 공격했다고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판단되면, 생활교육위원회를 열어 학생 징계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즉각 격리해야…다른 학생 수업권 보장 필요"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다른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는 것까지 생활교육위원회 등으로 규제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실 내 학습방해나 교사 지시불이행을 즉각 막을 장치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 사이에서는 수업 방해 행동 시에 즉각 격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전담상담교사나 교감·교장 상담 등을 통해 다수 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은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호와 동시에 교사의 교육적 지도가 가능하도록 다른 나라 사례 연구를 포함해 합리적 제도 마련을 위한 교육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