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미래는 일자리… 정년연장·임금피크제 동시 법제화를"
2021.06.22 18:27
수정 : 2021.06.22 18:27기사원문
"약무기업(若無企業) 시무노동(是無勞動). 기업이 없으면 노동 자체도 없다." 경제학자 출신이자 여권에서 대표적 경제통으로 불리는 최운열 전 의원은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를 묻는 질문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란 의미로 강조했던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를 인용하며 새롭게 해석해 기업과 일자리의 중요성을 말했다.
명량대첩을 앞두고 조선 수군의 근거지로 겨우 살아남은 호남 수호에 모든 것을 걸었던 장수의 절박함을 되새겨 차기 정부도 기업활동 활성화에 사활을 걸어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고, 국가경제의 미래가 보인다는 의미다.
대담=심형준 정치부장
최 전 의원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 경제상황과 향후 대응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피력했다. 노동개혁 필요성도 제기한 최 전 의원은 청년들의 실업과 기존 근로자들의 정년연장 문제를 아우르기 위해선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의 동시 법제화'를 제안했다. 아울러 똑같은 일을 해도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은 월급이 정규직 월급보다 더 많을 수 있게 '동일노동 공정임금' 체계도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지냈던 최 전 의원은 과거 한은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같이 단기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충격요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최 전 의원은 "국가가 위기국면인데도 중앙은행이 제3자처럼 하면 안된다"며 "차라리 법이라도 개정해 중앙은행이 위기 시 시장에 개입할 수 있게 룸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정책 수정론을 놓고 여당이 시끄러웠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모든 정책이란 게 지고지순이란 건 없다. 부작용이 나타나면 정책유연성을 발휘해서 수정이 필요한데, 정부·여당이 시간을 너무 끌었다. 제일 큰 문제는 우리나라 부동산세제가 징벌적인 게 많다는 점이다. 기본 의식주의 바탕이 되는 1가구1주택에 대해 거래세와 보유세를 너무 중과하면 거래 자체가 막힌다. 이런 부분은 빨리 시장이 작동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2·4 공급대책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는데 공공주택 위주에서 벗어나 민간주도 방식 활성화 목소리가 높다.
▲임대주택 부분은 공공이 담당하고, 민간주택 공급은 민간사업자가 하는 게 활성화 방법이다. 재개발·재건축은 민간사업자가 해야 하는데 막혀있다 보니 전체 공급에 차질이 있다. 자꾸 신도시를 개발하는데, 신도시 개발은 앞으로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로 장기적으로는 15년 내지 20년 후에 신도시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90% 완화까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었다. 부동산 대출규제를 좀 더 풀어야 한다는 지적에 어떤 의견인가.
▲우리 정부가 수요대책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신규 주택 구입자 문제를 포함해 기존 주택 보유자의 대출도 LTV, 총부채상환비율(DTI)로 굉장히 강하게 컨트롤했다. 신규 최초 구입자에 대해서도 LTV를 규제하면 그 사람들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현금 가진 부자들만 참여하게 된다. 최초 구입자는 정책적으로 컨트롤하기보다 금융회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하는 부분은 금융감독원이 건전성 평가할 때 간접적으로 반영해 평가하면 유동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론 공과를 평가한다면.
▲전체적으로 방향은 맞았지만 대응이 너무 반시장적이어서 부작용이 많이 생겼다. 우리 경제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공급과 수요가 너무 불균형 돼있다. 기업이 투자를 못하는 것은 수요가 거의 죽어 있어서다. 비정규직 근로자 규모가 750만명이나 되고, 이 규모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수요가 살아나기 어렵다. 유효수요를 유발하기 위해선 소주성의 방향은 맞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2년 새 거의 30%를 올린 것은 과잉대응이었고, 결국 부작용이 생긴 것 아니냐.
―2022년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차기 정부의 경제운용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가장 중요한 정책은 일자리다. 일거리가 있으면 일자리가 생긴다. 일거리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일거리는 기업이 만든다. 기업이 많이 생길 수 있게 하고, 기업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말씀처럼 '약무기업 시무노동'이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라 했듯, 기업이 없으면 노동도 없다. 결과적으로 창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투자하기 쉽게 규제를 완화해주는 게 차기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미국에선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우리나라도 하반기나 내년 초 금리인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국제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완화정책으로 쭉 가면서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너무 풀려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등에서 자산가격 버블이 심각하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신중히 검토하는데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수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 금융질서에 놓인 한 국가이기에 미국 등 선진국 금리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거기에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과거 한은도 미국 연준처럼 단기회사채를 직접 사들이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발권력을 지닌 한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할까.
▲평상시에 중앙은행이 나서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인수는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 국면인데도 중앙은행이 '이건 우리 역할이 아니야' 하면서 제3자처럼 하면 안된다. 한은법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제1목표는 물가관리고, 두번째가 금융시장 안정이다. 금융시장 안정목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위기 시 중앙은행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항상 보수적이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안하려 한다. 차라리 법이라도 개정해 위기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 룸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별세로 불거진 상속세 문제를 보면 우리나라 상속·증여세가 지나치게 징벌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 가업상속 시 어떤 경우 65%까지 세금을 낸다. 이렇게 해서 1년에 거둬들이는 증여·상속세가 이건희 회장 이전에 4조~5조원밖에 안된다. 보다 현실적으로 완화해, 예를 들어 15~20%까지 상속·증여세율을 대폭 낮춰주면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세원을 더 확대하는 대신 세율을 낮춰도 세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원칙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
―거대 양대노총으로 인한 노동개혁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어떤 정부가 됐든 더 이상 노동개혁을 하지 않고는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한 경제로 가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근로기준법이 1952년 제정된 법이다. 그 당시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근로자를 상대로 만든 법이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재택근무가 상당히 일반화됐다. 코로나가 수습돼도 재택근무는 보편적 형태로 자리잡을 듯하다. 과거엔 생각할 수 없던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경제가 지금 우리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걸 다 흡수할 수 있는 노동관계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있다면.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못 구하고, 기존 근로자들은 정년연장을 필요로 한다. 두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동시에 법제화하는 것이다. 이런 노동개혁과 함께 직무분석이 100% 잘 돼있다는 전제 아래 비정규직 월급이 더 많아야 한다. 동일노동 공정임금 체계의 검토 등이 노동개혁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할 내용이다. 기업이 살아남아야 내 일자리가 존재한다. 기업이 죽으면 일자리 자체가 없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기본소득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이유는.
▲모든 정책이라는건 지속가능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경제학자들이 볼 때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다. 재원이 제한돼 있어서다. 그 대신 한정된 재원으로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하게 제공한다면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국민에게 10만~20만원 나눠줘 봐야 낭비지 소비진작 효과도 없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아직은 우리 사회가 수용하기엔 너무나 문제가 많다. 우리 재정이 감당할 수도 없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참패와 2030세대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그리고 이준석 신드롬을 평가한다면.
▲민심이 왜 돌아섰을까.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성공한 정책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아무리 정치지도자들이 자기가 좋다고 해도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아니면 국민은 돌아설 수밖에 없다. 이준석 현상은 우리 정치판에 빅뱅을 몰고 올 서곡 같기도 하다. 여야를 포함해서 정치판이 완전히 새롭게 변모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최운열 전 의원은 1950년생.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조지아대 경영학석사, 재무관리박사 출신으로 학계와 정관계를 두루 거친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1982년부터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시작한 최 전 의원은 서강대 부총장과 한국증권연구원(현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코스닥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 자문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정부와 활동 접점을 넓혔다.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해 여당에서 경제분야 활동을 이끌었다. 민주당에선 정책위원회 부의장과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 위원장, 자본시장활성화 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정리=김학재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