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범죄 걸려도 병원 간판 갈고 의사 개명… "환자만 모른다"
2021.06.22 18:41
수정 : 2021.06.22 18:55기사원문
의료범죄로 환자 사망 등 심각한 결과가 발생해도 환자가 이를 알지 못해 2차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 성범죄 등을 저지른 의사가 개명을 하고 병원 취업을 시도하고 병원 역시 병원명을 바꾸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환자 사망 뒤 간판갈이
22일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범죄로 사람이 죽거나 다친 병원이 간판을 바꿔다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홍콩에서 입국한 환자가 서울 강남 일대 의원에서 지방흡입 수술을 받던 중 이상증세를 보여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고를 일으킨 병원은 정형외과 전문의가 개업한 곳으로, 간판에 A성형외과라고 표기해 운영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의원은 과거 다른 상호로 영업하다 사고 전 간판을 바꿔달고 영업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계에선 비슷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란 지적이다. A병원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 만인 지난해 2월, 서울 강남 B성형외과에서도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코수술을 받던 중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제대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B성형외과가 상호를 변경해 영업을 이어갔다는 점에 있다. 수사 중 바뀐 상호로 영업을 했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해당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했고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성범죄자' 개명해 병원 취업도
병원만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병원을 옮겨 의료 업무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심한 경우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별다른 문제없이 진료를 하는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게 2011년 동기 의대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받은 C씨의 경우다. 한 의과대학에서 동료를 성추행해 출교 조치된 C씨는 이후 다른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C씨는 한 병원에 인턴으로 입사해 근무하기도 하였는데 개명을 해 신상정보가 전과 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수면내시경을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을 전신마취시킨 뒤 성폭행한 의사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 병원을 운영하고, 의료사고로 환자 수명을 사망케 한 의사가 처벌을 받은 뒤 다시 환자를 수술하는 등의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현행법으론 이들의 의사업무 수행을 막을 수 없는 상태다.
의료계에선 의료범죄를 일으킨 병원이 간판을 바꾸고, 의사가 개명하거나 지역을 옮겨서 의료행위를 지속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환자가 이러한 병원과 의사를 사전에 가려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2015년 공장식 유령수술로 세상을 떠난 고 권대희씨 모친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는 "대희가 세상을 떠나고 사고를 일으킨 병원도 몇 년 동안이나 유령수술 한 걸 알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영업을 했다"며 "환자들이 자기를 수술하는 의사와 병원이 어떤 곳인지도 알 수 없는데 최소한 수술실CCTV라도 있어야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겠나"하고 말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김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