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 "유령수술 상해죄로 다뤄야" 첫 언급 확인 [김기자의 토요일]

      2021.06.26 19:16   수정 : 2021.06.26 19: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환자 마취 후 약속된 의사가 아닌 이가 대신 수술을 하는 유령수술 사건을 상해죄로 다뤄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현직 보건의약전문 검사가 학술대회에서 상해죄가 성립된다는 취지로 발표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유령수술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기혐의를 적용한 사례는 있지만 상해나 살인 혐의를 인정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발표다.

검찰은 2016년 공장식 유령수술로 사망한 고 권대희 사건 유족이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대신 살인과 상해치사로 다뤄달라며 공소장 변경을 요청한 사건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4월 4일. ‘[단독] 마취 뒤 의사 바꾸기 ‘과실’ 아닌 ‘상해·살인’으로 처벌해야’ 참조>



현직 보건의약 전문검사 "유령수술은 상해"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유재근 서울중앙지검 보건의약 전문 검사가 지난 2015년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2015년 춘계공동학술대회에서 ‘유령수술은 상해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학술대회는 서울서부지검 소속 보건의약식품전문검사 커뮤니티가 주관한 것으로, 의료법학회 소속 법조인들과 현직 검사들이 참여해 활발한 학술교류를 나눴다.
이날 주요 안건은 2014년 그랜드성형외과 유령수술 사건 이후 불거진 유령수술 문제로, ‘수술환자의 권리보호에 대한 형사법적 쟁점’과 ‘그림자 의사(shadow doctor)의 진료행위의 형사법적 접근’이 각각 주제로 논의됐다.

유 검사는 첫 주제인 수술환자 권리보호 문제에 대해 발표하며 유령수술이 명백한 상해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유 검사는 “환자가 수술동의서에 ‘수술참여 의사’를 명시하는 등 특정 의사를 배타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대해서만 수술행위에 대한 승낙을 하였음에도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한 경우는 (일반적인 의료행위와) 달리 보아야 할 것”이라며 “의료행위의 긴급성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사실상 환자에 대한 ‘적대적인’ 신체손상을 인식하고 의도하였다고 볼 수 있어 상해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발표했다.

이어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여 수술을 강행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려운바, 상해죄의 죄책을 인정함이 상당하다”고 부연했다.

현직 검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유령수술이 상해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힌 첫 사례다.



"의사 형사법 책임 폭넓게 인정해야"

약사 출신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난 4월 공인전문검사에게 수여 되는 ‘블루벨트’를 받은 유 검사는 현재 식품·의료범죄를 전담해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에 소속돼 근무 중이다.

유 검사는 이날 발표에서 △환자 동의 없이 비뇨기과 수술 집도의를 교체한 사례에 대해 폭행죄를 인정한 미국 법원 사례 △환자로부터 지정진료의사로 신청받은 뒤 자신이 수술하지 않았으면서도 수술한 것처럼 서명한 대학병원 교수에게 사기죄를 인정한 한국 법원의 사례를 들어 국내외 법원이 유령수술을 다룬 태도를 살폈다. 유 검사는 “대리수술로 인한 환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침해의 점은 쟁점이 되지 아니하였다”면서도 “환자의 의료주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례”라고 소개했다.

유 검사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국민의 법감정이 의사후견주의에서 환자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으므로, 대리수술이나 중대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의무를 위반한 경우 등에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의사에 대한 형사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미용성형수술과 같이 수술의 필요성이나 긴급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수술에서는 수술의사, 수술방법, 수술부작용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경우, 수술로 인해 발생한 상해의 결과에 대한 환자의 승낙이 전혀 없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의사의 형사법적 책임을 폭넓게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대희 사건 '공소장 변경' 檢 결정은?

한편 검찰은 고 권대희 사건 유족이 지난 4월 낸 공소장 변경 요청서를 두고 고심을 하고 있는 상태다. 권씨 모친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권대희 사건 피고인인 집도의 장모씨와 마취의 이모씨, 유령의사 신모씨 등에게 적용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살인과 상해치사 혐의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유족과의 통화에서 “사안이 총장님한테까지 보고가 됐다”며 “중앙지검에서 증거랑 법리검토를 하고 있고 결과가 나오면 향후 공판절차에서 반영될 예정”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권대희 사건은 2016년 경희대학교 3학년생이던 권씨가 서울 강남 한 성형외과를 찾아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끝내 숨지며 세상에 알려졌다.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던 집도의는 뼈만 절개하고 수술실을 나갔고 이화여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지 6개월 차인 신모씨가 수술을 이어받았다. 권씨가 수술 중 3500cc에 이르는 피를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의료진 모두 수술실을 비우고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 홀로 권씨를 지혈한 시간만 30분이 훌쩍 넘었다.

수사결과 병원은 당시 권씨와 다른 환자 2명 등 총 3명을 동시에 수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은 일상적으로 비슷한 수술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환자에겐 별다른 통지를 하지 않았다. 이른바 공장식 유령수술이다.

수사를 진행한 검찰은 살인죄나 상해치사죄는커녕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올린 무면허의료행위 혐의조차 적용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기소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만으론 집행유예가 유력했기에 유족은 수사검사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검찰에 항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수사검사는 의료진 측 변호사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온 동기동창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한 뒤에야 무면허의료행위 혐의를 기소했다. 권씨 측은 지난 4월 살인과 상해치사 혐의로 공소장이 변경돼야 한다며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유령수술 사건, 수사심의위 개최여부도 관심

유령수술을 상해죄 등 고의범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달 초 그랜드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한모씨는 유령수술이 재산범죄인 사기죄로만 다뤄지는 것이 부당하다며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유령수술 관련 수사심의위 소집요청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한씨는 지난해 9월 그랜드성형외과 전 원장 유모씨 등을 살인미수와 중상해 혐의로 처벌해달라며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근 이의신청을 접수한 인물이다.

한씨를 대리해 수사심의위 소집요청서를 낸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피의자 중 일부는 의사면허에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이 사건 대리수술이 이루어진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그 병원에서 의사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며 "전문가와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 유령대리수술에 대한 제대로 된 법적 평가가 내려지는 시작점이 되어 더 이상 유령대리수술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유령수술로 사기죄가 확정돼 징역1년과 벌금 300만원 판결을 받았다. 한씨의 고발 및 이의신청, 수사심의위 소집요청은 유령수술이 사기죄로 다뤄지는 게 부당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유령수술 등 잇따르는 의료범죄에 대해 국가에 책임을 묻는 국민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선웅 의료범죄척결 시민단체 닥터벤데타 대표는 “대한민국의 수술실은 사실상 법적•사회적 감시와 통제의 사각지대”라며 “(유령수술로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사건을 사기죄나 업무상과실로만 다룬 검찰은) 유령수술공장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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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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