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코인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눈치…"사고땐 누가 책임?"
2021.06.27 18:10
수정 : 2021.06.27 19:42기사원문
■시중은행들, "1호가 될순 없어"
27일 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제휴를 추진중임에도 선뜻 실명 계좌 제휴 확약서 발급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 은행 디지털 부서에서는 적극 추진을 장려중이지만 자금세탁방지부서가 강한 반대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는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에 실명계좌를 열어준 3개 은행(NH농협·신한·케이뱅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특히 자금세탁방지(AML) 여부를 관할하는 금융위원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전언이다.
3개 은행중 A사 관계자는 "대형 시중은행들이 대부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가상자산 거래소 제휴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라면서 "3개 은행이 1개, 혹은 2개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터주긴 했지만 거래소가 금융위에 등록할 요건이 되는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해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디지털부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업하는 방안등을 고려해 제휴 방안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지만 자금세탁 방지부서가 거칠게 반대하면 명분이 희박하다"면서 "3사끼리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거래소에 가장 먼저 실명계좌 확인서를 내주는 '1호 은행'은 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제휴해주려니 '너도 나도' 몰려들어 당혹
특금법상 가상자산 거래소가 금융위에 등록하려면 △정보보안관리체계(ISMS) 인증 △실명계좌 확약 등 2가지 최소 기본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거래소는 특금법 유예기간이 끝나는 오는 9월 24일까지 금융위 등록 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영업을 할 수 없다. 현재까지 ISMS 인증을 받은 업체는 4대래소를 포함해 총 20개다. 4대 가상자산 거래소 이외에 16개곳은 주로 지역 지방은행들과 실명계좌 거래를 추진중이다. 최근 일부 업체들이 계좌 제휴를 추진중이었으나 이중 일부 은행은 거래 도중 협의를 중단했다. 내부에서 자금세탁방지부서까지는 설득했지만 예상치 못한 청탁이 연달아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B은행 관계자는 "1개 은행이 1개 거래소하고만 편하게 제휴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면서 "제휴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만 하면 다른 거래소들이 연달아 연줄을 통해서 제휴를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일부 은행은 거래를 원점으로 돌렸고, 당사의 경우는 거래소 제휴 관련 내부 심사 규정을 만들어 거절할 명분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면책 기준 마련해달라" 금융위에 요구도
은행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공동책임 여부다. 실명계좌를 터준 후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금융당국이 은행에도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최근 은행들은 연합회를 통해 면책기준을 마련해달라고 제안했다. 기준에 맞춘 관리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 거래소에서 사고가 일어나도 은행에는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는 얘기다. 업계에선 금융위가 어느정도 선에서 면책조항을 마련해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면책조항이 생기면 은행들도 거래소에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해줄 명분이 생긴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아야만 금융위에 등록 신고서를 낼 수 있다. 이 요건이 갖춰져야 금융위도 거래소 심사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현재까지 금융위에 심사 요청을 한 곳은 '제로'다. 금융위 입장에서도 7월경에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요청을 해야 심사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심사과정이 최소 2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로부터 면책조건을 마련해달라는 제안서를 받아서 다음달 중 어떤 조치를 낼지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