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벌금 4조원 노역으로 탕감··· 고액일수록 '몸으로 때워'
2021.06.30 13:41
수정 : 2021.06.30 13:41기사원문
노역으로 수십억의 벌금을 대신하는 황제노역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장 3년에 불과한 노역장 유치제도의 허점을 노려 자산을 은닉하고 벌금은 노역으로 때우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이다.
지난해 벌금 4조2000억원 '노역 탕감'
6월 30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벌금 집행대상 61만6300명 가운데 노역장 유치를 선택한 인원은 5.3%인 3만3197명이다. 70%가 넘는 43만9000여명이 벌금을 현금으로 납부했고, 나머지는 자산압류 등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흥미로운 건 노역으로 대체된 벌금 비율이다. 전체 벌금 집행대상 7조2220억원 가운데, 노역으로 대체하게 된 금액이 무려 4조2414억원에 달한다. 환산하면 58.7%다.
다시 말해, 3만여명이 4조원이 넘는 벌금을 노역으로 대체한 것이다. 단순 계산해도 인당 1억2700여만원 꼴이다. 반면 벌금을 완납한 이들은 인당 259만원 정도를 냈다. 인당 5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같은 차이는 황제노역자를 막지 못하는 법체계에서 비롯된다. 상술한 전재용씨의 사례처럼 하루 일당으로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씩 때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황제노역, 귀족노역이란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4년 벌금 254억원을 내지 않고 하루 5억원씩 탕감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역시 200억원대 벌금을 받고 내지 않아 하루에 4000만원 가량을 탕감받을 가능성이 제기된 한의사 사례 등 보도된 것만도 수건이다.
2019년 금괴를 밀수한 일당이 법원에서 인당 조 단위 벌금을 받기도 했는데, 이 역시 내지 않고 노역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법원 확정판결 뒤 노역으로 대체할 경우 하루 10억원이 넘게 탕감하게 된다.
수백억대 벌금 선고? 실상은 '황제노역'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다. 수십억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는 금융사기범이나 조세포탈범 중에선 노역탕감 비율이 70%를 웃돌 만큼 높다는 지적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90% 이상이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환형유치제도 설계에 기본적인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허재호 회장 황제노역 논란 이후 노역장 유치 최소 일수가 법으로 정해졌지만, 최장 유치기간이 3년으로 못 박혀 황제노역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황제노역뿐 아니다. 교도소 밖 노동자보다 시간당 3~4배 많은 벌금을 탕감하고 있는 귀족노역자도 적지 않다. 최저시급 기준으로 하루 7시간 근무를 가정하면 3년 동안 탕감할 수 있는 액수는 6100여만원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노역자당 평균 탕감 벌금은 1억2700여만원으로 2배가 넘는다. 그나마도 개별 노역일수가 3년에 미치지 않아, 노역자들의 평균 탕감액이 최저시급의 5배 이상인 경우가 상당수다.
국회에선 뒤늦게 구멍막기에 나섰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노역장 유치기한을 현행 3년에서 7년으로 대폭 상향하는 형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이다. 유치기한이 10년인 영국 등의 사례에 비해 다소 적지만 자산을 은닉하고 노역을 선택하는 불건전한 사례를 다소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법안은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pen@fnnews.com 김성호 김지환 기자